RX는 글로벌에서도 내수 시장에서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형 SUV이다. RZ는 렉서스가 전용 플랫폼으로 선보인 첫 순수전기차다. 둘 다 브랜드에 있어서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기대주다.
렉서스코리아가 지난 22일 신형 RX, 신차 RZ 모델로 미디어 시승회를 진행했다. 화창한 초여름 날씨에 차량의 성능을 극한까지 경험할 수 있는 인제 서킷에서 테스트 드라이빙이 시작됐다. RX와 RZ의 출정을 축하하듯 LC, LS 등 렉서스코리아 라인업 모델들이 함께 나와 트랙을 달렸다. 첫 번째 시승차는 LC 500 컨버터블과 LS 450h 모델이다. 렉서스의 퍼포먼스를 담당했던 내연기관 차, 하이브리드 기술을 대표하는 차들이다. 특히 LC는 총길이 3.9㎞ 19개의 코너를 갖춘 인제 서킷을 달리는 데 가장 적합하다. 물론 토요타의 GT 수프라가 지원을 나왔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둘 다 이날의 주인공은 아니다.
풀 트랙을 달린 후 맞이한 차는 마침내 RZ다. 두 번째 코스는 슬라럼(러버콘을 세워두고 지그재그로 장애물을 통과, 핸들링과 민첩성을 확인할 수 있는 타임 트라이얼 테스트)이다. RZ는 전기차임에도 불구하고 18인치 타이어(기본 탑재)를 신고 코스에 임했다. 타이어 사이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승차감이 아닐까 싶다. 다만, 아쉽게도 슬라럼에서 승차감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코스는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는 가속 성능을 점검하는 것인데, 여느 다른 전기차들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서킷을 빠져나와 공도로 RX를 타고 나갔다. 이번 5세대 RX는 업그레이드된 부분이 많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디지털 콕핏이다. 크기를 키운 디스플레이들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엠보싱이 들어간 도어 패널도 세련된 요소다. 다만, 이번 RX는 후륜조향 시스템과 E-Four 사륜구동 시스템, PHEV 전동화 모델이 핵심이다. 기자가 선택한 모델은 PHEV. 와인딩이 거듭되는 시골길에서도 안정감은 인상적이다. 과감한 코너 진입에 용기가 북돋는다. 특히 라인업에 새롭게 합류한 PHEV는 무게 중심도 잘 잡혀 있다는 생각이다.
브랜드 첫 순수전기차를 표방하는 RZ는 플랫폼이 중요하다. 사실 렉서스의 순수전기차는 RZ가 처음이 아니다. 정확히는 UX 라인업에서 300e라는 모델을 판매했다. 내연기관 차에 배터리를 꾸역꾸역 집어넣어 서둘러 만들어낸 것 같은 차량이다. 지난해 판매를 시작했다가 한 해도 안 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비운의 차다. 주행거리가 짧았던 게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힌다. 내연기관 차 플랫폼 그대로 세그먼트 내 경쟁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RZ는 얘기가 다르다. UX가 갖지 못한 배터리 효율성을 받아들였다. 인증된 주행거리는 377㎞, 배터리 용량은 71.4kWh로 이전 UX보다 20kWh 정도가 더 늘었다. 주행거리도 100㎞, 출력도 100마력 정도 더 향상됐다. 비슷한 체급이지만 스탠스는 더 좋아졌고 후방 패스트백 스타일도 한층 더 매력적이다. 렉서스의 시그니처인 전면 스핀들 그릴은 보디 패널로 막았다. 이를 두고 그들은 “스핀들 보디”라고 불렀다. 그릴도 이제 렉서스 브랜드의 일부가 됐다는 소리다.
주행 감성은 날카롭고 훌륭하다. 스펙은 더 전기차다우면서도 주행 감성은 내연기관 차와 더 비슷하다. 초반 가속이 부드러워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쭉 밟으면 기름 차에서 경험하기 힘든 강력한 파워를 느낄 수 있다. 무게 때문인지 앞뒤 밸런스가 맞지 않았던 UX의 문제점은 전용 플랫폼으로 확실히 잡아낸 듯했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RZ에는 다이렉트4라는 업그레이드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다고 했다. 접지력 상태에 따라 구동력이 앞뒤 100:20으로 상시 이동한다는 이론이다. 실제로도 코너 공략에 진심을 다할 수 있을 듯, 자세는 물론 가감속에도 안정적이다.
잠시 타본 시승이었지만, RZ는 감성적으로만 보더라도 경쟁력이 상당해 보인다. 기본형 모델은 8480만원으로 보조금도 절반 받을 수 있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아 RZ는 가장 이질감이 없는, 전기차로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아 보였다. 물론 감성 품질을 중심으로 말이다. 문득 든 생각은 현대차의 일본 진출이다. 렉서스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높이에 아이오닉5가 선전할 수 있을까? 이날 시승 행사를 쭉 함께했던 본사 수석 엔지니어들은 우려가 아닌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한국 전기차도 토요타 진출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고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므니다.”(통역분) 개인적인 이런 난감한 질문에도 거침없는 답변을 해줘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