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모터스

해체 후 격상? 현대차의 오락가락 반도체 전략

조성환 모비스 대표, 흩어진 반도체 부문 통합해 사업부문 격상 예고
정몽구 명예회장, 2012년 차량용 반도체 개발 위해 현대오트론 설립
일감몰아주기 논란에 사업부문 매각 후 지난해 3월 오토에버에 합병

기사입력 : 2022-02-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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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지난 1월25일 사내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여러 사업부로 나눠진 반도체 사업을 사업부로 통합하거나 사업부문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말했다. 사진=현대모비스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지난 1월25일 사내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여러 사업부로 나눠진 반도체 사업을 사업부로 통합하거나 사업부문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말했다. 사진=현대모비스
"여러 부문에 흩어져 있는 반도체 팀을 한데 묶어 사업부 혹은 부문급으로 격상시키겠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사업에 직접 진출할 뜻을 밝혔다. 지난 1월25일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반도체 사업부문 격상 계획을 밝힌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여러 계열사 별로 반도체 관련 팀을 운영 중이다. 현대모비스와 현대오토에버를 중심으로 사업부 내에 구매, 품질부서 등에 반도체 관련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조 대표는 이처럼 흩어져 있는 사업부를 한데 묶어 이를 사업부서로 통합하거나, 사업부문급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만큼 향후에는 직접 반도체를 조달하거나 관련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과거 반도체 생산 및 조달 관련 계열사를 직접 설립한 바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5년 설립한 현대오트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대오트론은 지난 2020년 해체됐다. 관련 사업부문이 지금처럼 여러 계열사에 부서별로 흩어지게 된 이유다.

직접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야심차게 출발했다가 결국 계열사를 해체했고, 다시 반도체 수급난에 사업부문 격상에 나서는 현대차그룹의 '오락가락 반도체 전략'을 살펴봤다.

2005년 합작사로 출발해 2012년 오트론 출범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전략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영전면에 나섰던 정몽구 명예회장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회사설립에 나선 것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부품회사인 콘티넨탈과 2005년 10월 '카네스'란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2012년 4월 그룹 내 차량용 반도체 및 부품 연구인력을 통합해 '현대오트론'을 출범시켰다. 차량용 반도체를 비롯해 차량용 전문 부품들을 직접 개발하겠다는 정 명예회장의 의지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인력 스카웃을 놓고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가 본격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인력 스카웃에 나서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LG전자 등 반도체 주력회사들이 인력보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대로 2015년 삼성전자가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자동차 전장사업에 나서자, 현대차그룹 내 반도체 연구인력들이 스카웃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대오트론이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면서 양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오트론은 2013년 소형차량용 통합엔진 제어기를 비롯해 하이브리드용 제어기를 양산했고, 2015년에는 1세대 파워트레인 전원 반도체도 개발했다. 또한 2017년에는 현대차가 자랑하는 GDI엔진에 사용되는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완료했으며, 차량 내 종합제어장비인 ECU용 칩을 양산하기도 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지난 2012년 직접 설립에 주도했던 현대오트론은 일감몰아주기 논란 등으로 인해 지난해 3월 주요 사업부문을 현대모비스와 현대케피코에 매각한 후 현대오토에버에 합병됐다. 사진=현대오트론
정몽구 명예회장이 지난 2012년 직접 설립에 주도했던 현대오트론은 일감몰아주기 논란 등으로 인해 지난해 3월 주요 사업부문을 현대모비스와 현대케피코에 매각한 후 현대오토에버에 합병됐다. 사진=현대오트론


발목 잡은 내부거래, 결국 분할 후 해체


현대오트론은 설립 이후 그룹 내 지원을 받으면서 빠른 시간 내에 덩치키우기에 성공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오트론은 2013년 6443억원을 시작으로 2014년 5911억원, 2015년 5884억원, 2016년 6947억원, 2017년 6588억원, 2018년 7424억원, 2019년 8598억원, 2020년 5394억원의 매출액(포괄손익계산서 기준)을 기록했다. 그룹 내 물량을 전담하면서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는 결국 공정위의 레이더망에 적발됐다. 공정위가 현대오트론의 내부거래 비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오트론은 한때 매출액 대비 그룹 내 내부거래 물량이 무려 90%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결국 지난해 3월 현대오트론을 해체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던 현대엠엔소프트를 묶어 현대오토에버에 합병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반도체 통합공급 및 연구개발 사업 부문은 현대모비스에 매각했으며, 자동차엔진 및 변속기용 부품 부문은 현대케피코에 매각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오트론의 합병과 관련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도 제기되기도 했다. 현대오트론과 현대엠엔소프트를 합병해 덩치를 불리게 된 현대오토에버의 개인 최대주주가 바로 정의선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오토에버 지분 7.33%를 보유 중이다. 합병 전 기준으로는 9%가 넘는 지분을 보유했지만, 지난 3월 합병 과정에서 신주가 발행되면서 정 부회장의 지분이 일부분 희석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나치게 높은 내부거래 비중에 내년부터 적용되는 개정공정거래법 부담 등이 결국 현대오트론의 합병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몽구 명예회장이 꿈꿨던 반도체 자립 계획이 결국은 무산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그룹의 일감몰아주기를 지적해왔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현대오트론과 현대엠엔소프트를 현대오토에버에 합병했다. 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그룹의 일감몰아주기를 지적해왔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 현대오트론과 현대엠엔소프트를 현대오토에버에 합병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 대란에 다시 사업부문 격상


현대오트론은 결국 해체 후 합병을 통해 사라졌지만 지난해 반도체 수급난이 자동차업계를 덮치면서 현대오트론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반도체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반도체를 공급받아야 할 자동차업체들도 덩달아 생산라인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 대표는 향후 현대모비스 내 반도체 사업부문을 통합해 사업부 혹은 사업부문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혔다. 조직 통합 및 확대를 통해 반도체 수급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제조업계에서는 이에 현대오트론을 통해 반도체 자립을 꿈꿨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선견지명을 주목하고 있다. 현대오트론이 존속했다고 해서 반도체 품귀현상이 사라지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차량용 반도체 사업부문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현대차그룹에 장착될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자립을 꿈꿨던 정몽구 명예회장의 혜안도 주목할만 하지만,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정의선 부회장도 아버지가 추진했던 사업이었던 만큼 합병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고,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현대오트론의 합병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모터즈 기자 seojy78@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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