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듣기만 해도 흥분되는 단어다. 페라리는 명차, 슈퍼카의 대명사와도 같다. 브랜드 명칭이기도 하지만 드라이버 이자 창업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페라리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가 8일 개봉했다.
기자들을 위한 시사회는 지난 6일이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조용했다. 보통이라면 자기 브랜드가 영화에 나온다면 홍보성으로 영화표 뿌리기에 일쑤였을 터다. 한때 영화계에 잠시 출입했던 터라 굳이 시사회 영화표를 구했고 들뜬 마음에 영화를 봤다. 개인적인 감상평은 대만족이다. 일단 자동차 업계나 마니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어중간한 마니아들은 접근조차 하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 까칠하고 건방진 것으로 유명한 엔초 페라리의 성격처럼 말이다.
감히 마이클 만 감독의 의도를 짐작해보자면 이 영화는 과거를 투영해 미래를 바로잡기 위한 영화다. 동심을 다루지만 자동차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매개체가 됐을 뿐. 지극히 엔초 페라리의 인간적인 사생활을 기록한 느낌이다. 크게 위대해 보이진 않는다.
명품 핸드백처럼 사치스러워야 하는 지금의 페라리와는 매우 먼 거리를 둔다.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의 기존 작품인 리틀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가 연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감독이 다른 두 영화는 사전에 합의라도 한 듯 ‘명품 브랜드 도장깨기’에 나선 듯한 비슷한 분위기다.
영화는 엔초 페라리가 가장 화려했고 가장 험난했던 1957년으로 돌아간다. 전후에도 끊임없이 모터스포츠에 열광하는 유럽인들의 모습이 담겨있으며 한 사람의 인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 전개가 영화의 이해도를 결정짓는다. 아들을 잃은 아내 라우라 페라리와 외도를 통해 새로운 아들을 얻은 엔초 페라리, 그리고 이탈리아 전역 공도를 가로지르는 1000마일 레이스 밀레밀리아에서의 우승과 알폰소 데 포르타고의 불의의 사고가 대비되는 영화의 핵심 주제가 되어 준다. 사고 장면은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해 무게를 실었다. 누구에게는 꿈으로 누구에게는 악몽으로 남을 거라는 두 시각을 한 데 담았다.
밀레밀리아는 자동차 마니아들의 낭만과도 같다. 밀레밀리아의 전설 타치오 누볼라니가 남긴 명언이 있는데, 그는 밀레밀리아를 칵테일에 비유하면서 “모든 재료의 이름을 하나하나 말할 순 없지만, 한 번 맛보면 그 맛을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르망24시간 내구 레이스와는 달리 공도에서 장거리를 달리며 자동차의 내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경기였다. 자동차는 엔진을 중심으로 빠른 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공도에서 펼쳐졌던 레이스는 위험이 따랐다. 많은 희생자를 냈고 많은 안전 기술들을 만들어 냈다. 당시 여기에서 우승하는 브랜드가 지금의 명품 브랜드에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 같다. 마치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엔초 페라리의 차남 피에르 페라리는 현재 회사의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페라리와 마세라티가 각축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밀레밀리아에는 이탈리아 브랜드 말고도 알파 로메오, 포르쉐, BMW와 같은 외국 제조사들도 참가했었다. 가장 주목받았던 건 스털링 모스가 몰던 메르세데스-벤츠 300 SLR이었다.
영화 내용 중에서도 스털링 모스에 대한 견제가 잠시 나오긴 하지만 비중이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 독일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배제는 마이클 만 감독이 유태인 출인이라는 사실과도 살짝 연관을 지어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