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단단한 뼈대와 빠른 속도를 갖춘 날렵한 체형으로 파워와 스피드를 함께 지닌 동물을 꼽으라면 단연 재규어(아메리카 표범)가 아닐까 싶다.
재규어는 힘이 세고 성질이 거센 맹수 중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재규어는 다른 맹수들과 비교했을 때 질주 능력만큼은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러한 재규어의 야생 유전자를 본떠 만든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바로 영국의 정통 스포츠카 브랜드 '재규어'다.
재규어 명성에 걸맞은 대표 모델을 뽑으라면 맹수 본성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F-TYPE(타입)'이 제격이다. F타입은 컨버터블(무개차)과 쿠페(2인용 세단형 승용차)로 이뤄진 전체 라인업을 칭한다.
특히 F타입 SVR 쿠페 모델은 재규어에서 가장 빠른 속도와 힘을 자랑하는 맹수 중의 맹수다. 하지만 제어가 가능한 맹수로 남을 해치거나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매끄러우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전면 보닛 라인과 롱노즈-숏데크(보닛 부분이 길고 트렁크가 차지하는 비율이 작음)를 통한 완벽한 비율은 F타입 SVR 쿠페가 스포츠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공기역학적인 요소를 강조한 재규어 디자인 특성을 감안할 때 곳곳에 뚫려있는 공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강력한 주행 성능을 뒷받침할 슈퍼 퍼포먼스 브레이크 시스템이 기본 사양으로 장착됐으며 빨간 색의 브레이크 캘리퍼(디스크 제동을 일체화 한 장치)는 사틴 그레이색으로 마감한 20인치 알로이 휠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후면에는 탄소섬유를 재료로 공기역학적으로 제작해 주행 속도에 따라 자동 제어되는 뒷 날개가 장착돼 고속주행 때 과도한 양력(물체가 수직방향으로 받는 힘)이 생기는 것을 막고 다운포스(down force)를 형성해 차체를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도왔다.
다운 포스는 공기 역학적으로 자동차 차체를 길 쪽으로 누르는 힘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운 포스가 증가하면 차량이 고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린다.
실내는 재규어의 자동차 경주 전통을 담아낸 로젠지 퀼팅(마름모꼴 누비질)이 적용된 좌석을 장착했다.
좌석 곳곳에는 SVR 로고가 묻어 있었고 알루미늄 패들 시프트(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고 변속 제어가 가능한 장치)와 금속 스포츠 페달 등을 통해 스포츠카의 정체성을 살렸다.
또한 히팅·쿨링 시트, 시트 메모리 기능 등 편의 사양이 기본으로 적용돼 주행할 때 쾌적하고 편리했다.
기자는 19일 서울에서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까지 왕복 약 100km를 달렸다.
출발은 고출력을 가진 차량답게 웅장한 소리를 내며 시작됐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머뭇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속도는 폭발적이었고 몸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뒤로 쏠렸다.
자유로 구간에서 속도감은 규정 속도가 없었다면 미처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빠른 변속력과 부드러운 가속력을 자랑했다.
낮은 차체와 공기역학적인 디자인 덕분에 기자가 차량 속도를 내자 공기 저항을 받지 않고 치닫는 느낌을 받았다.
F타입 SVR은 4475mm의 전장(차 길이)과 1923mm의 전폭(차 넓이), 그리고 1311mm의 낮은 전고(차 높이)로 마치 고성능 레이스카를 연상시켰다.
인텔리전트 AWD(지능형 사륜구동)을 적용해 코너 구간에서 안정적인 회전력과 후륜구동의 불안했던 밀림 현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전형적인 후륜구동 기반 스포츠카와는 달리 F타입은 사륜구동이 가능했다. 이에 따라 네 바퀴에 적절한 힘 분배를 통해 완벽한 승차감과 안정감을 제공했다.
또한 재규어 최초로 탑재된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AS)으로 부드럽게 운전할 수 있었다.
특히 속도를 내면 낼수록 귀를 울리는 고출력 배기음은 액티브 스포츠 배기 시스템과 조화를 이뤄 운전 재미를 더했다.
F-TYPE SVR은 5.0리터 V8 슈퍼차저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575마력과 최대토크 71.4Kg·m의 폭발적인 힘을 발휘했다.
고속 구간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재보니 4초 정도가 걸렸다. 제원상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3.7초다.
최고 속도는 322km까지 나온다고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속도를 끌어올리기엔 불가능했다. 가능하다고 해도 속도감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차 배기량이 5000cc인 F타입은 복합 연비가 7.5km/l(도심 6.3km/l, 고속도로 9.5km/l)로 나쁘지 않았다.
차량 가격은 2억2237만4000원(개별소비세 인하, 부가세 포함)임을 고려하면 유류비 걱정하며 탈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승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국내 여건상 이 차량의 진가를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길 막연히 기다려본다.
김현수 글로벌모터즈 기자 khs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