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아무에게나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자연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만이 개척자가 된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명가’를 자부하는 쌍용자동차가 이달 출시한 ‘렉스턴 스포츠(칸) 다이내믹 에디션’은 그러한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다.
렉스턴 스포츠(칸) 다이내믹 에디션은 쌍용차 픽업트럭 '렉스턴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 칸'에서 일부 사양이 추가된 차량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가격표상 두 차량 중간 트림(등급) ‘프레스티지’에 오프로드(험로) 특화 사양을 추가한 일종의 특별 트림이다.
쌍용차가 2018년 처음 세상에 선보인 렉스턴 스포츠는 국산 픽업트럭의 대명사다. 렉스턴 스포츠는 2000년대 초 출시돼 탄탄한 수요층을 확보한 ‘무쏘 스포츠’와 ‘코란도 스포츠’의 계보를 잇는다. 쌍용차는 지난해 렉스턴 스포츠 전장(길이)을 310mm 늘여 5405mm의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렉스턴 스포츠 칸을 내놨다.
렉스턴 스포츠(스포츠 칸 포함)는 4~5인 가족이 타기 넉넉한 실내와 적재함을 갖춰 실용성을 극대화하며 독보적 지위를 누려왔다. 첫 출시부터 누적 판매량 10만 대를 돌파하기까지 2년 3개월이면 충분했다. 쌍용차는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팔린 픽업트럭 가운데 렉스턴 스포츠와 스포츠 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97%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3%는 제너럴모터스(GM) 픽업트럭 ‘콜로라도’다. 세계적 SUV 브랜드 '지프'와 픽업트럭 본고장 미국 '포드'가 경쟁 모델을 국내에 내놓을 예정이어서 앞으로 시장점유율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쌍용차로서는 픽업 시장에서 위상을 지키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무기가 필요했다.
자동차를 여가나 레저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층이 늘어난 점도 다이내믹 에디션 출시를 부추겼다. 쌍용차가 렉스턴 스포츠와 스포츠 칸 고객을 대상으로 구매 이유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가·레저 활동에 필요해서’라고 답한 비율이 각각 32.0%, 37.4%로 전체 3분의 1을 차지한 점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4일 경기 가평군 칼봉산에서 만난 시승 차량은 렉스턴 스포츠 칸에 다이내믹 에디션 사양을 적용한 것이었다. 총평부터 하면 운전 그 자체로도 레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낮고 날렵한 차체를 갖춘 고성능 자동차가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에서 속도와 코너링으로 재미를 선사한다면 렉스턴 스포츠 칸 다이내믹 에디션은 험로 개척자로서 성취감과 짜릿함을 느끼게 했다.
칼봉산 계곡은 밤새 내린 비로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오프로드 주행이 처음인 기자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차 능력을 시험하기 좋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예상대로 시승 구간 초입부터 세찬 계곡을 마주했다. 비 때문에 물이 탁해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속 페달에 발을 살짝 얹었다 떼는 느낌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물밑 돌덩이를 넘을 때마다 몸이 좌우로 흔들렸지만 자세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계곡을 빠져나와 사람 머리만한 돌이 나타날 땐 마치 ‘한 번 믿어봐’라고 말하는 듯했다.
호주 수출용 모델에 이어 다이내믹 에디션에도 적용된 ‘다이내믹 서스펜션’은 믿음직스러웠다. 서스펜션은 바퀴로 전달되는 충격을 흡수할 뿐 아니라 좌우 흔들림으로부터 차체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다이내믹 서스펜션은 스프링이 더 단단하고 차량 전고(높이)를 10mm 높여 다양한 요철에 견디도록 설계됐다.
굽이치는 계곡을 다섯 개 정도 건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다. 어떤 계곡은 막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야 했다.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니 동력이 곧바로 네 바퀴에 전달되는 게 느껴졌다.
배기량 2157cc 디젤 엔진의 힘은 오르막 등판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렉스턴 스포츠 칸에 탑재된 ‘e-XDi220’ 엔진은 6단 자동변속기 기준 187마력의 최고출력을 3800rpm(분당 엔진 회전수)에서 내고 1600rpm부터 2600rpm까지 42.8kg·m의 강력한 최대토크를 발휘했다. 렉스턴 스포츠는 스포츠 칸보다 최대토크는 40.8kg·m로 약간 낮지만 1400~2800rpm의 더 넓은 엔진 회전 영역에서 고르게 힘을 냈다.
힘이 아무리 좋더라도 동력이 네 바퀴에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으면 바퀴가 헛돌기 마련이다. 렉스턴 스포츠(칸)는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춰 뒷바퀴에만 동력을 전달할지(2H) 네 바퀴 모두에 동력을 전달할지(4H 또는 4L) 선택할 수 있다. 기어노브 쪽에 있는 다이얼을 돌려 ‘사륜 고속(4H)’ 모드로 바꾸자 네 바퀴에 힘이 고르게 전해지며 미끄러지지 않고 돌밭을 올랐다.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기존 렉스턴 스포츠에서도 선택 가능한 사양이다.
산 속을 지나 일반도로로 접어들었다. 시승 일정상 주행 성능을 다양하게 느껴볼 수는 없었지만 일상적인 용도로 충분히 타고 다닐 정도였다. 과속방지턱을 넘은 직후에 뒤따라오는 꿀렁임도 잘 억제됐다.
큰 크기에 비해 운전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차체가 높아 전방 시야가 트인 덕분이다. 시승 차량 렉스턴 스포츠 칸 길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고 좌우 폭은 1950mm로 기아자동차 대형 SUV 모하비(1920mm)보다 30mm 넓다. 평소 이보다 작은 크기의 차를 탔더라도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르진 않을 것 같았다.
다이내믹 에디션은 오프로드 특화 트림이지만 편의사양을 알차게 담았다. 인기 품목인 앞좌석 통풍시트와 뒷좌석 열선시트는 물론 터널 진입 또는 야간에 전조등을 자동으로 켜주는 오토라이트 컨트롤 시스템, 강우량에 따라 와이퍼 속도를 알아서 조절하는 우적감지 와이퍼 등이 들어갔다. 이밖에 전용 데칼(장식용 스티커)과 바닥·차동기어 보호 커버, 오프로드 타입 사이드 스텝(발판), 휴대전화 무선 충전기, 2열 시트 아래쪽 수납공간 등이 기본 적용됐다.
안전사양으로는 △사각지대 감지 △차선변경 경보 △후측방 경보 등이 포함된 ‘스마트 드라이빙 패키지Ⅰ’과 △긴급 제동보조 △전방 추돌 경보 △차선 이탈 경보 △스마트 하이빔(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때 상향등을 꺼주는 기능) △앞차 출발 알림 등으로 구성된 ‘스마트 드라이빙 패키지Ⅱ’를 선택 품목으로 제공했다.
일상과 레저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면서 가격도 착하다. 차종별 다이내믹 에디션 트림 기준 렉스턴 스포츠는 3142만 원, 렉스턴 스포츠 칸은 3369만 원이다. 여기에 화물차로 분류돼 자동차세가 연 3만 원 미만으로 저렴하고 개인사업자는 차량 구입 때 낸 부가세의 10%를 환급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