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차를 양 날개로 삼아 글로벌 자동사 시장을 누비겠다는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구상이 하나둘씩 실현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13일 준중형 신형 세단 아반떼 ‘N라인’을 출시했다. 아반떼 N라인은 앞서 4월 출시된 ‘올 뉴 아반떼’ 1.6리터 가솔린 모델에서 성능을 높인 차량이다. 1.6리터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에 과급기(터보차저)를 얹어 출력을 204마력(일반 모델 123마력)으로 향상하고 역동적인 주행에 걸맞은 다양한 사양을 적용했다. 성능뿐만 아니라 외관상 변화도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현대차는 그동안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녹여내 상품으로 내놓으며 국내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N에는 이러한 현대차의 유전자가 담겼다. N라인은 일반 모델과 고성능 N 모델의 중간에 자리잡아 일반 모델보다 역동적이면서 N보다는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조금 더 대중적이다. 현대차는 향후 2.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을 장착한 ‘쏘나타 N라인’을 출시해 N 브랜드를 더욱 폭넓게 운용할 계획이다.
글로벌 유명 자동차 제조사들은 저마다 고성능 브랜드를 갖고 있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AMG’나 BMW ‘M’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들 고성능 모델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고성능 N은 정 수석부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5년 BMW M 시리즈 개발을 주도한 알버트 비어만 사장과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 영입을 주도하고 2018년 3월 고성능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고성능 브랜드 기틀을 구축했다. ‘N’은 현대차 기술이 태어나는 경기 화성시 남양(Namyang)연구소와 독일 경주용 트랙 뉘르부르크링(Nürburgring)의 영문 앞 글자를 따온 것이다.
고성능 브랜드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의 집념은 아반떼 N라인과 ‘밸로스터 N’, ‘i30 N’(국내 미출시)으로 실현됐다. 이들 차량 가격은 3000만 원대다. 벤츠 AMG나 BMW M 시리즈는 1~2억 원을 호가한다. 현대차 N이 갖는 최대 장점은 가격 장벽을 대폭 낮췄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고소득자가 아니고서는 즐기기 어려웠던 모터스포츠를 대중화하는 물꼬를 튼 셈이다.
내연기관 전략에 고성능 N이 있다면 친환경차 영역에는 ‘아이오닉(IONIQ)’이 한쪽 날개를 맡는다. 현대차가 지난 10일 선보인 아이오닉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적용한 순수 전기차 브랜드 명칭이다. 현대차는 내년 준중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아이오닉 5’를 시작으로 2022년 중형 세단 ‘아이오닉 6’, 2024년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 7’을 잇따라 출시한다.
아이오닉 브랜드는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정 수석부회장이 꺼낸 '회심의 카드'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글로벌 전기차 시장점유율 1위는 테슬라(17.7%)다. 현대차(3.7%)는 6위, 기아차(3.5%)는 7위에 올랐다.
아이오닉이 내세우는 차별화 요소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충전 시간(20분)과 450km가 넘는 주행거리, 실내 공간 극대화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이동 수단에 그쳤다면 미래 전기차는 생활공간으로 진화한다는 정 수석부회장의 철학을 담은 것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기술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모빌리티(이동수단) 경험을 선사하는 ‘전동화 경험의 진보’를 구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와 관련해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청와대가 개최한 ‘한국형 뉴딜 국민 보고대회’에서 “2025년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를 100만 대(현대·기아 합산) 판매해 세계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