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크고 강인해 보인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미니밴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외관은 탑승자를 압도하기보다 든든함을 느끼게 한다.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갖춘 속은 안락함 그 자체였다. 기아자동차가 지난달 출시한 4세대 카니발은 가족을 생각하는 ‘착한 아빠의 차’다.
기아차는 지난 2014년 3세대 모델 이후 6년 만에 4세대 카니발을 내놨다. 카니발은 국내 유일의 미니밴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누려왔다. 신형으로 완전변경(풀체인지)이 이뤄져 한층 고급스럽고 다재다능해졌다.
4세대 카니발은 경쟁 차종인 일본 혼다 ‘오딧세이’와 정면승부를 택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미니밴 세계 1위를 석권한 오딧세이를 따라잡으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4세대 카니발 출시를 앞두고 송호성 기아차 사장이 직접 생산라인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그 덕분인지 카니발은 ‘대박’의 기운을 물씬 풍기며 출발을 알렸다. 사전계약 하루 만에 2만 3006대가 계약되며 국내 모든 자동차를 통틀어 신기록을 썼다. 휴일을 제외하고 14일 동안 3만 2000명 넘는 소비자가 카니발 구매 계약서에 서명했다.
카니발은 7인승과 9인승, 11인승 세 가지로 판매된다. 기아차에 따르면 7인승(25%)과 9인승(70%)을 계약한 비율이 높았다. 특히 절반 가까이는 최상위 등급 ‘시그니처’를 골랐다. ‘내 가족이 타는 차는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카니발이 역대 최고 흥행을 예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궁금했다. 기자는 지난달 25일 기아차가 개최한 미디어 시승회에서 4세대 카니발을 타봤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을 출발해 경기 남양주시 동화컬처빌리지까지 왕복 70km 구간을 1시간 반 정도 달렸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서울춘천고속도로, 국도 46호선을 경유하는 경로였다.
시승 차량은 7인승 디젤 시그니처 모델이다. 선루프와 후석 엔터테인먼트 시스템(2열 모니터)을 제외한 모든 사양이 적용된 차량이었다. 워커힐 호텔 주차타워에서 방명록 작성과 체온측정, 손 소독 등 까다로운 방역 절차를 마치고서야 카니발 실물을 마주할 수 있었다.
기자가 처음 카니발을 봤을 때 “와, 크다”라는 감탄사가 기자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4세대 카니발은 전장(길이) 5155mm, 전폭(너비) 1995mm, 전고(높이) 1775mm, 축거(휠베이스) 3090mm를 자랑한다. 전작보다 전장 40mm, 전폭 10mm, 축거 30mm가 각각 늘어났다.
전체적으로 크기가 커지기도 했지만 디자인 때문에 더 크고 웅장해 보였다. 그물 모양의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이 좌우상하로 넓게 자리 잡았고 이를 둘러싼 주간주행등(DRL)과 크롬(금속) 질감 테두리가 인상적이었다. 미니밴이지만 SUV 느낌도 났다.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하단 범퍼 쪽으로 갈수록 넓어졌는데 그 덕분에 시각적으로 크게 느껴졌다.
측면부는 전조등(헤드램프)에서부터 슬라이딩 방식 뒷문이 열리는 레일까지 길게 이어지는 선이 돋보였다. 이 선을 쭉 따라가다 2열과 3열 창문 사이 ‘C필러’라고 부르는 지지대로 시선을 옮기면 마름모꼴 무늬가 박힌 가니쉬(장식)가 눈길을 잡았다. 차량 색상과 다르게 크롬으로 처리하면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후면으로 이동했다. 후면부는 전면부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넓어 보이는 시각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붉은 색 후미등(리어램프)은 가로로 길게 빠졌고 범퍼 양쪽에 하나씩 있는 후진등과 반사판 역시 옆으로 찢어진 모습을 했다. 덕분에 크기는 웅장하지만 둔해 보이지는 않았다.
외관을 전체적으로 훑은 뒤 운전석을 열었다. ‘블랙 하이글로시(검정 유광)’ 장식과 베이지색 내장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운전석에 앉으니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화면이 시선을 가로챘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화면은 각자 제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로 연결된 형태로 차량에 적용된 온갖 첨단기술을 외적으로 드러냈다. 무엇보다 12.3인치라는 숫자로 접할 때보다 직접 봤을 때 그 크기가 더욱 실감이 났다. 속도계를 비롯한 계기판의 각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왔다.
운전석 전동 시트와 거울을 조절해 출발 준비를 마쳤다. 요원 안내에 따라 주차타워 출구로 이동했다.
시승 차량은 주차타워 4층에 있었고 시내 도로로 진입하려면 1층까지 내려가야 했다. 다시 말해 층과 층 사이 좁은 통로를 내려가야 했다. 기자가 운전석에 앉았을 때 높이가 꽤 있는 덕분에 전방 시야가 트인 편이었다. 하지만 차체가 워낙 큰 데다 차폭감이 익숙지 않아 층간 통로에 다다랐을 때 살짝 긴장했다.
스티어링 휠(운전대)을 알맞게 틀어 통로로 머리를 내밀자 지도를 띄우던 화면이 바뀌었다. 그러고는 차량 주변을 360도로 비춰줬다. ‘서라운드 뷰 모니터’가 앞뒤는 물론 양 옆까지 장애물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한눈에 보여줬다.
이어 기자는 올림픽대로로 이어지는 도로로 진입했다. 우측 차선을 바꾸려고 방향지시등을 켜자 디지털 계기판 오른쪽에서 뒤쪽 상황 화면으로 나타났다. 사이드미러로 미처 놓칠 수 있는 사각지대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속도가 어느 정도 붙자 이따금씩 차량이 운전대를 보정해주며 차로 중앙을 유지했다.
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 가속 페달을 조금 더 깊이 밟아봤다. 시속 100km에서도 실내는 조용했다. 아무래도 일가족이 함께 타는 차다 보니 방음에 신경을 쓴 모습이다. 운전석과 동승석 창문에는 이중접합 차음 유리가 적용됐다. 다만 추월을 위해 기어를 한 단 내리고 빠르게 가속하면 디젤 엔진 소리가 약간 거슬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니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안 써볼 수가 없었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최근 출시된 현대·기아차에 대부분 적용돼 호평을 받는 기능이다. 설정해 놓은 속도로 꾸준히 달리면서 앞차와 간격이 붙으면 차가 알아서 속도를 조절한다. 곡선 구간이나 과속 단속 카메라가 있을 때에도 속력을 낮춰줬다. 가족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편리할 듯했다.
40여 분을 가다 입체 교차로로 빠져나왔다. 상당히 높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크게 기우뚱대지 않고 곡선을 잘 돌파했다. 물론 가족 안전을 생각하는 아빠들은 어느 한쪽으로 무게가 쏠릴 만큼 급하게 돌지 않는다.
반환점인 동화컬처빌리지에 도착해 차량을 세워놓고 실내를 구석구석 둘러봤다. 4~5인 가족이 널찍하게 앉고도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열과 3열 모두 앉았을 때 비좁은 느낌은 없었다. 보통 3열 좌석은 성인 남성이 앉기에 다소 불편하지만 카니발 7인승의 3열은 무릎 공간도 적당히 확보했다.
7인승 모델에는 2열에 ‘프리미엄 릴렉션 시트’가 적용된다. 통풍과 열선 기능이 있을 뿐 아니라 전동으로 무릎 받침대 높이와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등받이는 거의 누울 정도로 젖혀졌다. 무릎 받침대까지 최대로 올리면 비행기 비즈니스석 수준으로 편안함이 느껴졌다. 프리미엄 릴렉션 시트를 7인승에 기본 품목으로 포함한 점도 좋았다.
4세대 카니발은 3.5리터 가솔린과 2.2리터 디젤 2가지 파워트레인(동력장치)을 제공한다. 3.5리터 가솔린 모델은 최고출력 294마력, 최대토크 36.2kg·m를 낸다. 2.2리터 디젤 모델은 최고출력 202마력, 최대토크 45.0kg·m를 발휘한다. 연간 주행거리가 1만~1만 5000km 정도로 많지 않다면 정숙성이 뛰어난 가솔린 모델도 좋은 선택지다.
3.5리터 가솔린 모델 승차정원·등급별 가격은 개별소비세 3.5% 기준 △프레스티지 3160만 원(9·11인승) △노블레스 3590만 원(9·11인승), 3824만 원(7인승) △시그니처 3985만 원(9·11인승), 4236만 원(7인승)이다. 2.2리터 디젤 모델은 120만 원(9·11인승, 7인승은 118만 원)이 추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