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50)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현대기아차그룹(이하 현대차)이 캐시카우(Cash cow:수익 창출원)을 기존 자동차에서 에너지 산업으로 다각화한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수소연료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친환경 차세대 에너지 시장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는 자동차는 물론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시장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투싼 ix 수소전기차(FCEV)'는 현대자동차가 2013년 2월 울산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한 첫 수소전기차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이 일반인에게 낯 설은 시기에 나온 투싼 ix FCEV는 현대차가 에너지 분야로 보폭을 크게 넓히는 신호탄이 됐다.
현대차는 지난 16일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유럽에 수출했다. 투싼 ix FCEV를 내놓은 지 7년여 만에 이뤄낸 성과다. 현대차로부터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공급받는 'GRZ 테크놀로지스'는 스위스에 있는 수소 저장 기술 업체다. 자동차 회사가 비(非)자동차 부문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을 수출한 첫 사례인 셈이다.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탱크에 저장된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 전력을 얻는 방식이다. 수소전기차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에서 생산한 전력으로 구동한다. 휘발유나 경유 같은 화석연료와 달리 배출가스가 전혀 없고 물만 배출한다. 오히려 공기 중 미세먼지를 정화해 '달리는 공기청정기'로도 불린다.
현대차는 투싼 ix FCEV를 시작으로 수소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보급에 사활을 걸었다. 2018년 출시된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는 지난 7월 누적 판매 1만 대를 돌파했다. 같은 달 세계 최초의 상용 수소전기 트럭 '엑시언트'가 전남 광양항을 떠나 스위스로 향했다. 테슬라와 쌍벽을 이룰 만큼 기대를 모았던 미국 수소트럭 회사 니콜라가 '사기' 논란에 휩싸인 점과 크게 대조된다.
현대차가 주목한 수소연료전지는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수소연료전지는 기존 내연기관 발전기를 대체할 뿐 아니라 건설기계, 기차, 선박 등 화석연료를 동력원으로 삼던 각종 장비와 교통수단에 응용할 수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일반 배터리와 비교해 크기나 무게 면에서도 유리하다. 미국 에너지부(DOE)와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40톤급 트럭에 실리는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무게는 전기 모터와 배터리 조합이 10톤, 디젤(경유) 엔진과 연료탱크가 7.5톤이다. 반면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7톤이면 된다.
또 한 가지 현대차가 주목한 사업은 에너지저장장치(ESS)다. ESS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장치다. 가정은 물론 상업용 건물이나 공장에서 비상용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수명을 다한 전기차 폐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는 방안이 급부상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면 용량이 초기 대비 80% 이하로 줄어든다. 이를 ESS로 재활용하면 10년은 더 쓸 수 있다. 가령 수명이 80% 남은 현대 '코나 일렉트릭' 배터리(64kWh)는 4인 가구가 나흘 정도 사용할 전력(월 평균 사용량 350kW 기준)을 공급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글로벌 에너지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광폭 행보 중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스위스 수소 에너지 회사 'H2 에너지'와 합작법인 '현대 하이드로젠 모빌리티(HHM)'를 출범한 데 이어 두산퓨얼셀과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 시스템 실증에 나섰다. 올해 2월에는 현대건설기계와 수소연료전지 건설기계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전기차 폐배터리 기반 ESS 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국내 기업 OCI와 한국수력원자력, 한화큐셀 등과 손을 잡았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한 수소전기차는 금년부터 차량뿐만 아니라 연료전지시스템 판매를 본격화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 사업을 통해 생태계 확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수소연료전지와 ESS 같은 에너지 분야로 진출한 현대차 전략은 가까운 미래에 '신(神)의 한 수'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산업 중심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옮겨가는데 더 나중에는 자동차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며 "차만 팔아서는 향후 10년, 20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을 현대차가 느낀 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