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완성차업체들과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대거 참여해 대규모 공급망 구축을 위한 연합체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속셈이어서 향방이 주목된다.
24일(현지시각) 미국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파나소닉, 테슬라 등 미국 내 주요 완성차업체들과 배터리 관련 업체들은 전기차와 배터리의 대규모 공급망 구축을 위한 '미국 배터리 독립연합(CABI·The Coalition for American Battery Independence)'을 이날 출범시켰다.
CABI는 출범과 함께 "배터리 원자재와 제조 능력 등은 에너지와 기후 안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안보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리튬을 비롯한 배터리 원자재 확보부터 처리·정제, 부품 및 배터리 팩 제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공급망을 확보해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에 '국방물자조달법'을 포함한 정책적 지원도 요청하기로 했다.
CABI 관계자는 "전기차·배터리 산업과 관련해 정부의 정책지원과 의회의 세제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라며 "필요하다면 이들 산업을 '국방물자조달법'의 적용을 받게 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국방물자조달법은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해 민간기업에 정부계약을 우선 이행하거나 주요 물품 생산을 확대하도록 주문할 수 있게 한 법이다. 주로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지만, 개정을 통해 정치·경제적 상황에서도 발효할 수 있게 됐다.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하면 곧 바로 법이 발효되며 연방정부는 해당 물품에 대한 원자재 수급과 가격 등을 통제할 수 있다.
미국 전기차 배터리 관련 업체들이 CABI를 출범시킨 것은 글로벌 주도권 다툼에서 한국·중국에 크게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현지 매체들은 미국 내 완성차업체들과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 연합체인 CABI를 출범시켰다고 분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 23일 발간한 '2022년 글로벌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영향력이 미미하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77%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전기차 역시 54%가 중국에서 제조됐다. 원자재인 리튬 채굴 역시 중국이 전 세계 채굴량의 58%를 차지했으며, 니켈과 리튬은 각각 4%와 14%가 중국산으로 조사됐다.
반면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용 배터리는 전 세계 기준 7%에 그쳤으며, 전기차 생산량도 10% 남짓한 수준이다. 원자재 관련 통계에서는 모두 3% 미만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전기차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12만대에 불과했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 2021년 기준 660만대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판매된 차량 중 10%가 전기차였던 셈이다.
나아가 올해 1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한 200만대에 달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글로벌 1위 전기차 제조업체인 테슬라를 앞세워 전기차 제조부문에서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와 관련 산업에서는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테슬라와 미국 내 빅3(GM·포드·스텔란티스) 완성차업체들이 모두 미국 기업이 아닌 한·중·일 업체들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는 상황이다.
테슬라는 파나소닉(일본)을 중심으로 LG에너지솔루션(한국)과 CATL(중국)에서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주에 조인트벤처(합작사)를 설립하고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며, 포드는 SK온과 테네시·켄터키주에 3개의 공장 건설을 준비 중이다. 삼성SDI도 지난 25일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인디애나주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내 완성차업체들과 배터리 관련업계의 불만도 커졌다.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최근 미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위기감도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