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사이즈 SUV 시장에 선택지가 많아졌다. 국내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독점하고 있던 영역이다. 최근 들어 미국 브랜드가 공격적으로 신차를 내놨다. 나름 틈새시장을 공략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독일 차들과 가격은 물론 상품성에서도 같은 판 경쟁이 힘들었을 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캠핑 문화 확산, SUV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불모지 같던 초대형 SUV 시장에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격이 나눠진다. 프리미엄 딱지가 붙었는지 아닌지다. 쉐보레 타호와 포드 익스페디션은 없고,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링컨 네비게이터에는 있다.
시승차 네비게이터는 익스페디션과 파워트레인을 공유한다. 3.5ℓ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에 10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익스페디션보다 52마력이나 높은 457마력을 뿜어낸다. 토크는 71.0kg·m를 기록한다. 가솔린 모델 치고는 토크가 높아 보이지만, 풀사이즈 SUV들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정도는 돼야 만만치 않은 거구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3.5t 트럭 정도를 생각하면 될 거 같다. 참고로 익스페디션의 퍼포먼스는 405마력 최고출력에 66.0kg·m의 최대토크를 기록한다. 토크 질감은 수치만 높을 뿐이지 한 체급 아래인 대형 SUV를 탈 때와 비슷하다.
다만, 세팅의 차이로 가감속의 체감은 다를 수 있다. 네비게이터는 생김새와는 달리 온화한 편이다. 과격하게 가속페달을 밟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지만(설령 그렇게 할라치면 터보렉이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초반부터 여유롭게 속도를 올린다. 간혹 힘이 부족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복잡한 실내에서 그 흔한 에코나 스포츠 등의 주행 모드를 열심히 찾아 바꿔 달릴 필요는 없다. 큰 덩치를 민첩하게 움직이기 이전에 이미 광활하게 펼쳐진 전방 시야가 짜릿한 스릴감을 제공하고 있어서다. 특히, 빙글빙글 도는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면 휠 데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차체 밸런스는 훌륭하다. 익스페디션의 앞 더블위시본 대신 조금 더 딱딱한 느낌의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사용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더블위시본이 승차감이 더 좋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경우에 따라 다르다. 구조의 단순함이 차체의 밸런스를 맞춰줄 때가 있다. 둔덕을 넘을 때 출렁임이 좀 있지만, 회전 구간에 접어들면 제법 안정적이다. 상시 네 바퀴를 굴리는 시스템도 접지력에 한몫하면서 차체 밸런스가 유지되는 거 같기도 하다.
가성비를 따질 수 없지만, 일단 합격점을 받은 주행 성능 이외, 마음에 쏙 드는 부분은 역시 드넓은 실내 공간과 프리미엄을 달게 해준 소재와 편의사양들이다. 특히, 대시에 적용된 우드트림은 올드하지만 멋은 있다. 요즘 ‘아재우드’라 MZ세데에게는 외면당하기도 하지만, 중년의 오너에게는 분명 ‘아낌없는 사랑’이다.
앞 좌석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마사지 기능을 기본으로 무려 30가지 방향으로 관절이 움직인다. 헤드레스트의 전·후진뿐만 아니라 기울기에서 허리 지지대의 움직임, 그리고 허벅지의 높낮이까지, 허벅지 조절은 심지어 왼쪽 오른쪽이 별도로 움직이는 게 상당히 인상적이다. 요즘 가정용 안마의자도 꽤 비싼 거로 아는 데, 몰라서 말이지만, 아마 그 정도의 역할은 충분히 해내는 거 같다.
2열 시트는 두 개, 독립적으로 놓인 캡틴 시트다. 가운데 공조기, 라디오, 냉장고 등의 기능이 있는 스토리지 박스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냉장고 안에는 와인병 두세 개 정도는 들어갈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다.
3열 시트는 미니밴을 위협하는 풀사이즈 SUV만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어른도 충분히 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7인승 대형 SUV에서 여기는 아이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보급형 모델이라면 평소 쓰지 않는 용품들이나 나뒹굴겠지만, 네비게이터는 버튼 하나로 2, 3열을 모두 접을 수 있어 활용도가 좀 더 높은 편이다.
접힌 시트는 거의 평탄화가 이뤄진 상태다. 아이들까지 차박에 끌어들일 수는 없겠지만, 서먹서먹한 부부가 나란히 눕기에는 충분한 평수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