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을 나와 공장을 향해 가는 길에는 '비정규직을 복직시켜라'라는 문구가 적힌 수많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오랜 시간 걸려있었을까. 낡고 빛이 바래 강하지 않은 바람에도 힘없이 펄럭거렸다.
지난 25일 찾아간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으로 향하는 길에 기자의 눈에 들어온 모습이다. 이곳은 26일 공식적으로 공장 가동을 멈춘다. 생산 중이던 소형 SUV 트랙스와 말리부 차량 단종에 따른 조치다. 가동이 중단됨에 따라 기존 부평 2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1200명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 중 700명은 창원으로 나머지 500명은 바로 옆에 있는 부평 1공장으로 전환 배치된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방문한 한국지엠 창원공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겉모습은 9000억원을 들여 새롭게 다듬은 창원공장은 깨끗하면서도 첨단 느낌이 강했다. 반면 부평공장은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6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평 2공장은 1962년 새나라자동차의 부평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한다.
부평 2공장과 가까운 청천동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출입로를 통해 큰 화물 차량들이 오갔고 이를 통제하는 경비원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여느 다른 자동차 공장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공장 중 일부가 생산을 중단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내일 부평 2공장이 생산을 멈추지만 분위기는 아직 괜찮은 거 같다"고 했다.
이날 기자와 만난 부평 2공장 프레스 공정에서 일하는 강모씨는 '승용 2공장 폐쇄 결정, 노동자는 잘못 없다. 한국지엠 경영진은 경영실패 인정하고 추가대책 마련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서 있었다. 그는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일방적인 회사의 정책 추진이라고 했다.
그는 "창원에 배정 받은 인원이 700명인데 아직 참여가 저조해 약 250명 정도밖에 신청하지 못했다"며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회사는 입사 역순으로 무조건 발령을 내려고 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된다면 3가지가 지켜져야 한다"며 "첫 번째는 임금성, 두 번째는 기간, 세 번째는 복구확약"이라고 했다.
강씨는 특히 회사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지난달 창원공장에서 열린 지엠 한국출범 2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로베르토 렘펠 사장은 부평공장에 대한 발전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당시 렘펠 사장은 "현재 부평·창원 공장은 풀가동을 하고 있어전기차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또 전기차 생산 결정은 많은 이해 관계자가 연계되어 있고, 이를 결정할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다"며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평 2공장 직원들 만큼은 아니지만 주변 상권도 가동 중단 여파를 의식하는 모습이었다. 과거 군산공장이 폐쇄되고 그 주변이 유령도시가 될 정도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적으로 이미 사람이 없는데 여기서 더 줄어드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공장 주변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청천동 일대는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낙엽만 도로를 휩쓸고 다녔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의 발걸음이 줄어든 것이 1차 원인으로 꼽히지만 다음 주부터는 여기에 이유가 하나 더 생겨난다.
이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코로나19로 이미 사람이 없는데 이번 공장 중단으로 사람이 더 줄 것이 뻔해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고 그랬지만, 지금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확 줄었다"고 말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이 줄었는데 더 줄게 생겼다면서 "2공장 사람들이 창천동 상권을 먹여 살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게는 영업시간이 10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시간이라고 명시해놨지만,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겨있었다.
한편, 한국지엠의 지분 17.02%를 가진 KDB산업은행은 최근 이를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산은은 지난 2018년 한국GM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소 2028년까지 한국GM 지분을 보유한다는 '10년 지속가능성 보장(이하 10년 약정)'을 미국의 GM그룹과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산은이 먼저 한국GM에서 손을 떼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