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현대차는 한 번의 시도나 영광스러웠던 옛 모델에 대한 오마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나가는 데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브랜드의 핵심 모델로 자리 잡은 플래그십 차종 그랜저 7세대를 공개하고 사전예약을 개시했다. 초기 물량 부족으로 기존 고객만 예약을 진행했지만 그마저도 1만1000명이 몰렸다.
흔히 ‘각그랜저’로 알고 있는 그랜저 1세 모델은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1986년 처음 공개됐다. 전형적인 3박스 타입의 세단으로 디자인됐는데, 곡선보다는 직선을 많이 사용했다. 해외 클래식카들과도 비슷한 모습인데, 대량 생산을 시작했던 시대 심플한 디자인이 더 각광받았다. 1세대 그랜저에서 디자인 특징은 각진 라인들 이외에도 C-필러 뒤쪽으로 적용된 쿼터글라스(오페라글라스라고도 부른다)와 후륜 휠하우스 모습이다.
2세대 모델은 6년 뒤인 1992년 탄생했다. 1세대 모델과 마찬가지로 미쓰비시와 합작으로 개발됐다. 디자인에서는 직선보다는 유선형으로 다듬어 현대적인 모습을 갖췄다. 차체도 커졌으며, 기존 그랜저의 특징이었던 쿼터 글라스가 없어졌다. B-필러를 검은색으로 처리하며 1열과 2열의 연결성을 강조했는데, 차체가 더 길어 보이는 효과를 줬다. 2세대 그랜저는 프리미엄 고급차를 표방해 보닛 위 현대차 앰블럼을 장식했다.
3세대로 접어들어서는 미쓰비시와 결별했다. 1998년 완벽한 독자 모델의 탄생이다. 3세대 모델인 그랜저 XG는 브랜드에서 다른 라인업 모델들과도 디자인 요소를 공유하면서 조금 더 대중적인 차로 거듭난다. 전면 그릴과 헤드라이트 디자인 등은 아반떼 XG와도 비슷한 모습이지만, 차체는 훨씬 더 크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갖췄다. 또한, 국산차 중에서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처음 채택한 모델이기도 하다. 프레임리스 도어가 갖는 의미는 크다. 정밀한 조립이 되지 않는다면 내부에 풍절음 등이 발생해 고급차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다. 따라서 현대차의 기술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밀레니엄을 거치고 2005년 탄생한 4세대 그랜저 TG 모델은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모습이다. 요즘에도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럭셔리함보다는 세련미를 강조했다. 쇼퍼드리븐(뒷좌석에 주로 타는)에서 오너드리븐(직접 운전을 하는) 성향이 더 짙어졌다. NF 쏘나타와도 패밀리룩을 공유하며 효율성과 대중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TG 모델부터는 C-필러 후방이 쿠페처럼 완만하게 떨어지는 유선형 라인을 갖췄고 리어 휠 하우스 위 휀더 부분에 볼륨감을 살려 더 역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됐다.
2011년 출시한 5세대 모델인 그랜저 HG는 이전 모델에서 볼 수 있었던 그랜저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직선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곡선을 사용했다. 곡선이지만, 부드러움보다는 날카롭고 세련된 라인들을 갖췄다. 2열, 후방 도어는 굴곡 라인까지 적용하며 최첨단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때부터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고유의 디자인 언어도 가지게 된다.
6년 주기로 변경되는 그랜저 디자인은 2016년 다시 6세대로 거듭난다. 5세대 모델의 디자인을 완전히 뒤집어엎는다. 그릴과 헤드라이트 등 전면 이미지가 180도 달라졌다. 이 당시 제네시스 브랜드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됐던 때라 비슷한 디자인 요소가 많았다. 그릴 중앙에 박힌 커다란 현대차 앰블럼이 그랜저 IG임을 나타낼 뿐이었다. 다만, 그랜저 IG는 3년 만인 2019년에 파격적인 변신을 꾀하며 완전히 새로워진 그랜저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때를 6.5세대라고 일컫기도 한다.
7세대 모델의 코드명은 GN7이다. 이번 그랜저는 1세대 때부터 6세대까지의 특징을 아우르며 헤리티지 디자인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그랜저에서 볼 수 있었던 C-필러 쿼터글라스가 뚜렷이 재현됐고, 1열과 2열을 일체형처럼 보이게 한 검은색 B-필러(2세대)를 볼 수 있다. 3세대 모델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프레임리스 도어를 채택했으며 4세대의 볼륨감, 5세대의 날카로운 유선형 라인들이 적용됐다. 6세대 모델에서는 첨단 이미지를 이어받았다. 아직은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지만, 과거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국내 반응은 긍정적일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