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역사의 20세기와 21세기를 이어주고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로 자리매김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가 새롭게 돌아왔다. 지난 2016년 가을, 6세대 모델이 나온 지 6년 만이다. 신형 그랜저는 현대차의 플래그십을 다시 정의하는 차로 요약된다. 이전 세대가 떠오르지 않은 파격적인 디자인·크기·첨단 기술 탑재 등 3박자를 두루 갖췄다.
운전석 문을 열면 보수적이었던 과거의 그랜저는 떠오르지 않는다. 일체형 계기판과 모니터를 제외하고 새롭게 디자인된 스티어링 휠, 공조 장치는 낮설다. 처음에는 눈과 손이 어색했다. 특히 변속기는 기존 버튼식에서 아이오닉5와 벤츠에서 보던 칼럼식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실내는 더 넓은 수납공간을 확보했고 보기에도 깔끔해졌다.
임원들이 타는 차답게 뒷좌석도 신경 쓴 모습이다. 고급세단에서만 볼 수 있던 뒷좌석 시트 조절 기능이 적용됐다. 앞좌석과 같이 버튼 하나로 등받이를 뒤로 눕힐 수도 있고 세울 수도 있다. 허벅지가 닿는 방석 부분은 최대 7cm 정도 앞으로 뺄 수 있어 편안한 자세도 가능하다. 이 중 암레스트(팔걸이)에 있는 'REST' 버튼을 누르면 조수석이 앞으로 움직이며 비즈니스 좌석을 떠오르게 하는 시트로 바뀐다. 물론 모든 그랜저에 이런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차는 모든 옵션이 들어간 최고 사양 차량이다.
시승코스는 하남 스타필드에서 출발해 의정부에 있는 카페 파크프리베까지 왕복 70km 구간이었다. 출발하면서 운전대 오른쪽에 붙은 '마이크' 버튼을 눌러 '음성인식 차량 제어 기능'을 사용했다. 기착지로 안내해달라고 얘기하니 곧바로 길 안내를 시작했다. 열선시트도 손을 사용하는 대신 말 한마디로 킬 수 있었다.
놀란 것은 '증강 현실 내비게이션'이다. 제네시스 GV80 등에도 적용이 되면서 익숙해진 기술이지만, 이 차는 조금 달랐다. 더 향상된 기능을 포함하고 있었다. 중앙 화면에는 전방 카메라가 찍고 있는 도로 화면이 실시간으로 비춰졌다. 직진에서는 푸른색 라인이, 코너를 돌 때는 화살표가 생기면서 "여기서 좌·우회전해야 합니다"라고 실시간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운전이 서툴고 길 찾는 거에 어려움을 가진 누구나 한 번에 길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직한 인상을 주던 차는 운전대를 잡자마자 순한 양이 된 듯했다. 스티어링 휠은 가볍게 돌아갔고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틀면 그대로 움직였다. 5m가 넘는 차가 운전하기 편한 소형차 같이 느껴졌다.
가속도 시원하게 이뤄졌다. 300마력을 내는 3.5ℓ GDI 가솔린 엔진이 들어간 시승차는 여유로웠다. 오히려 힘이 남아돌았다. 50km 속도 제한이 있는 시내 구간에서는 맘껏 달릴 수 없어 오히려 아쉬웠다. 하지만 효율은 떨어진다. 이 차의 공식 연비는 ℓ당 9.0km다. 만약 효율을 생각한다면 같이 판매가 되고 있는 2.5ℓ GDI 가솔린 또는 1.6ℓ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를 추천한다.
전체적으로 그랜저는 만족스러운 차였다. 왜 사전 계약 대수가 10만대를 넘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도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수치상으로는 그랜저 IG와 비교했을 때 높이가 1cm밖에 낮아지지 않았지만, 머리 공간은 여유롭지는 않았다.
소음도 예상보다 컸다. 이중 접합 유리를 적용한 탓에 바람 소리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차량 하부에서 올라오는 노면 소음 등은 있는 편이었다. 아이오닉6과 똑같은 차량 키도 어울리지 않았다. 가벼웠고 저렴해 보였다. 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차량이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