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그랜저를 앞세워 고급화 전략을 펼치는 모양새다. 이번에 출시한 7세대 그랜저는 이전 모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그만큼 편의·안전사양도 프리미엄급으로 마련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타깃층을 승격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랜저는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이전까지는 현대차의 플래그십을 자처했지만, 이후로는 대중적인 모델로 인식돼 왔다. 북미 시장을 공략하던 토요타와 렉서스의 선례를 따르는 행보다. 다만, 전례 없는 전동화 전환 시점에서는 새로운 전략이 요구된다.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현대차 라인업을 조금 더 다양하게 확대하는 것이다.
기아의 행보와도 비교해 볼 수 있다. 현재 현대차 브랜드 라인업은 SUV에서 경형, 소형, 중형, 대형까지, 디젤에서 하이브리드와 가솔린, 전기차까지 다양한 모델로 구성돼 있다. 세단 부문에서는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그리고 이번에 나온 전기차 세단 모델인 아이오닉 6가 전부다. 기아 세단 라인업보다 더 빈약한 상태다. 기아의 경우 모닝 경형에서부터 K3, K5, K8, 스팅어, K9까지 디젤·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RV 부문에서도 카니발, 스포티지 등의 대중적 베스트셀링 모델이 자리를 잡고 있어 소위 ‘형보다 나은 동생’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판매량도 바짝 뒤쫓고 있다.
대신, 현대차는 앞으로 그랜저를 필두로 여러 가지 모델을 내세우며 대중화하기보다는 기존 모델 라인업을 더욱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랜저는 앞으로 제네시스처럼 E-GMP를 사용하지 않고 전동화 모델 라인업을 구축할 수 있다. 이번 신형 그랜저에 적용된 스티어링 휠이 이에 대한 힌트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신형 그랜저에는 아이오닉 5나 아이오닉 6처럼 배터리 차징 게이지가 자리해 있다. 앞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나 순수전기차 모델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지난달 14일 신형 그랜저 미디어 Q&A 세션에서 김윤수 현대차 국내마케팅실장 상무는 “2030년까지 11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축할 예정이지만, 현시점에서 그랜저 전기차는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도 “중장기 계획에 맞춰 추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을 전면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모델의 고급화 전략은 가격 상승분에 대한 상쇄 효과도 누릴 수 있다. 현재 수입차와 국산차를 불문하고 업계 전반적으로 자동차 가격이 치솟고 있다. 기존 모델과 비슷한 디자인에 크게 달라진 부분 없이 편의·안전사양을 적용한다면 가격 상승분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고객이 나올 수 있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통한 혁신적 디자인을 거친 모델이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의 이미지를 굳히고 상품성을 높인다면 인상된 가격에 대한 거부감이 상쇄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한편, 업계는 ‘현대’라는 브랜드명을 자동차에만 국한해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도 분석한다.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사업, UAM, 로보틱스 등의 다양한 모빌리티로의 사업 확장을 앞두고 있다. 정의선호의 리드에 따라 미래 모빌리티 사회로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만큼 기아가 ‘자동차’라는 단어를 떼어버린 것처럼 현대도 사업 영역을 다각화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동차 부문에서는 좀 더 현대차 브랜드만의 고유한 특성, 차별화를 확보하는 것이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헤리티지와 고급화를 추진하는 이유일 수 있다.
이렇듯 현대차는 다방면에서 라인업을 늘려 가려는 노력이 한참이다. 고성능을 중심으로 한 ‘N’ 브랜드 역시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고성능 모델의 브랜드를 구축하면서 볼륨 판매보다는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이에 대한 행보로 현대차는 모터스포츠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대차는 WRC. WTCR, 24시간 내구 레이스 등의 주요 경기에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