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것과는 딴판으로 주행감도 승차감도 아주 곱디곱다. 블라인드 테스트라 하고 5.9m 길이, 1.9m 높이의 덩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저 편안한 세단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마초의 얼굴을 한 정통 아메리칸 픽업트럭 GMC 시에나 드날리를 잠시 타본 소감이다.
GMC는 한국지엠에서 야심차게 가져온 천조국 대표 브랜드다. 그리고 시에라는 그 브랜드의 대표 풀사이즈 픽업이다. 그들만의 독특한 취향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로움,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아파트 상가 주차장에 6m짜리 차가 안 들어간다고 짜증 내지 않을 것. 기름값 오른다고 6리터대 복합연비를 탓하지 않을 것. 짐칸에 뚜껑이 없다고 아쉬워 말 것. 화물차 세금을 내게 되겠지만, 역시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들과 함께 달려야 한다는 것도.
이 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면 ‘드림 컴 트루’의 자동차 생활이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여기에 메달 수 있는 4톤급 세일링 요트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외부에 설치된 10개의 카메라로 견인 편의성도 뛰어나다. 요트가 너무 꿈 같은 이야기라면 할리데이비슨 스포스터 S 모델 정도는 카고에 싣고 다닐 수도 있다. 1500급이지만 스프레이온 베드라이너는 헤비듀티의 카고 성향을 충분히 보여준다. 공간 확장 등 여섯 가지 다양한 기능을 선보이는 테일게이트도 시에라만의 특허다.
무엇을 달든, 무엇을 싣든 훌륭한 승차감을 망칠 것 같지는 않다. 콜로라도도 레인저도 익스페디션도 에스컬레이드도 모두 그랬다. 미국차의 출중한 승차감을 새삼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웬만한 SUV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에 머물다 보면 가속 능력이 마음에 걸린다. 페달을 밟아보면, 큰 덩치라 민첩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답답하지 않다. 제동할 땐 3톤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원하는 곳에 멈춰 설 수 있는 재량 정도는 갖추고 있다.
노면이 거칠면 차가 울렁이는 게 눈앞에 보인다.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쥐고 있는 운전자의 몸은 그대로다. 22인치 타이어에 실시간 댐핑 어댑티브 서스펜션이 승차감을 돕는다. 비싸기만 한 그저 그런 에어 서스펜션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출렁이는 게 잔류감을 남기지 않는다. 모든 걸 내려다보는 높은 시트 포지션이지만, 어지간한 속도에서도 기분 나쁜 쏠림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탁월한 코너링까지 선보인다.
시에라에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 쉐보레 타호에도 들어가는 6.2리터 V8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갔다. 최고출력 426마력, 63.6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주행 감성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강력하면서도 부드럽게 힘을 발휘할 줄 안다. 더 거칠어봤자 승차감만 망칠 뿐이다. 이 차로 레이스를 즐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초반부터 가속이 부드럽고 고속에 접어드는 시간도 보기보다 짧은 편이긴 하다.
실내는 9330만원이라는 찻값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대시보드와 도어 부분 우드 트림은 픽업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느껴지도록 돕지만, 크게 어울리지는 않는다. 13.4인치 고해상도 컬러 터치스크린에서 나오는 360도 카메라는 이런 차에서 꽤 쓸모가 있다. 무선으로 연결되는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도 요즘 트렌드를 잘 따랐고 실내 주거성을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당연하겠지만, 수납 공간도 넓고 많다.
내수 시장 판매 모델은 두 가지로 나온다. 드날리와 드날리-X 스페셜 트림이다. 스페셜 모델의 가격은 9500만원이다. 기본형과는 170만원 차이이긴 하지만, 더해진 느낌은 그 이상이다. 도어를 열면 아래 나타나는 웰컴 프로젝션 라이트와 그릴부 ‘GMC’ 로고에 LED 라이트가 나타난다, 후면부 역시 로고에 불빛이 나오는 등 SNS에 올리려면 딱 좋은 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