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생소한 에너지인 e-퓨얼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물과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만든 혼합 연료다. 친환경적인데다가 기존 내연기관 엔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생산 과정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으로 꼽힌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와 수소차 이외에도 대체연료로 떠오르고 있는 e-퓨얼이 기존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기존 내연기관 엔진의 감성을 포기할 수 없는 슈퍼카 브랜드들이 e-퓨얼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포르쉐 등 몇몇 기업이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e-퓨얼 자동차 개발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유럽연합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등 몇몇 회원국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e-퓨얼을 쓰는 신차에 대해 지속적인 판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e-퓨얼 개발에 포르쉐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포르쉐는 이미 지난해 4월에 e-퓨얼 생산 설비 개발에 투자를 결정했고, 12월부터는 칠레 하루오니 공장에서 e-퓨얼 생산에 돌입했다. 포르쉐는 풍력 에너지를 사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e-퓨얼을 생산하고 가솔린 엔진의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프로토타입도 공개한 상태다. 지난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소개한 비전 357이 이 연료를 사용한다.
초기 투자 당시 마이클 슈타이너 포르쉐 AG R&D 이사회 멤버는 "e-퓨얼의 잠재력은 현재 13억 대 이상의 전 세계 내연기관 차량이 대변한다“며 "e-퓨얼은 기존 자동차 소유자에게 탄소 중립을 위한 대안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포르쉐는 파일럿 단계에서 연간 약 13만리터의 e-퓨얼 생산을 계획했고, 파일럿 단계 이후 2025년 이후는 연간 5500만리터, 나아가 2027년에는 5억5000만 리터까지 생산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연구에 따르면 e-퓨얼은 내연기관 인프라를 활용하는 산업·수송 모든 부문에서의 적용이 가능하다. 액체 상태의 e-퓨얼은 보관·수송이 용이하고 기존의 석유제품 운송·보관 인프라 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용적 측면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개발되는 e-퓨얼은 2030년 상용화 단계에 이르더라도 리터당 가격이 휘발유 대비 4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후 공급 확대로 가격이 싸진다고 하더라도 2050년쯤에야 휘발유와 비슷한 가격이 된다. 이에 따라 업계는 가능성을 열어두되 슈퍼카와 같은 일부 고가 차량의 업체들만 해당 사업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계산법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래 모빌리티 사회를 향하는 전동화 전환의 방향성에 대해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발간한 ‘e-퓨얼 전기차 중장기 수요에 위협 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내연기관차를 100% 전기차로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약 6조달러이지만, e-퓨얼로 100% 전환하는 데는 3000~4000억달러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두 가지 방법에서 비용은 약 20배 차이를 둔다. 그렇다면 오히려 e-퓨얼 개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늘려 상용화를 앞당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냐는 것이다. 배터리 소재의 공급 한계를 고려한다면 전기차보다 나을 수 있다. 이는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게다가 전기차 및 수소차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보조금 문제도 상당한 비용 부담이기도 되기도 한다.
현재 대부분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으며, 게다가 수소와 e-퓨얼까지 병행, 혹은 가능성을 확보해나가겠다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토요타도 수소 사업차 개발 방향을 기존 내연기관차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끌고 가고 있다. 어쨌든 전동화 전환에 투자 비용을 아끼는 것이 최선이다. 가장 효용성이 있는 방안으로는 e-퓨얼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활용하는 것으로도 가닥이 잡힌다.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는 '2023 탄소중립연료 기술 심포지움'이 개최돼 대체 에너지에 대한 토론이 펼쳐졌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배충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수송부문 탄소 중립에 있어서 고 에너지밀도 수송동력 연료로서 탄소중립연료는 필수적”이라며 “에너지 안보에도 큰 역할을 하는 e-퓨얼 기술을 위해 인프라개선, 신규산업 육성, 산업생태계 구축에 모든 분야가 공조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에너지 안보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원자재를 무기로 국가간 무역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배 교수는 이어 앞으로 탄소중립연료 생산과 자동차, 선박, 항공, 발전 분야의 활용기술에 대해서도 e-퓨얼 기술개발 방향에 대하여 더욱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