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 가격이 인상되는 시기에 한 고객이 전시된 차량을 점찍어 뒀다. 원하는 색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터라 며칠 더 고민했지만, 그사이 가격이 300만원이 뛰었다. 딜러는 회사 방침이라 가격 조정은 안된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고객은 똑같은 차에 웃돈을 얹어 구매하게 됐다. 기자 주변 한 지인의 이야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르고 있는 미국차 가격에 불만 여론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참 심각했던 고환율 영향을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유럽이나 일본차들보다 인상폭이 비정상적으로 큰 것이 문제다. 쉐보레, 지프, 포드가 대표적이다.
이들 3개 브랜드는 애초 대중적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최근 들어 프리미엄을 표방하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 쉐보레에서는 최근 트래버스의 가격이 약 500만원 정도 인상했고, 지프에서는 모델별로 많게는 2000만원까지도 인상됐다. 포드 역시 픽업트럭인 레인저의 세대변경 모델에서 상품성 개선을 내세우며 약 1000만원 가까이 가격을 올렸다.
예를 들어 지프 랭글러의 경우 2020년형 모델이 5080만원 시작 가격에 판매된 반면, 2021년형은 5990만원 약 900만원이 올랐고, 2022년형 모델은 7630만원으로 또 1600만원가량 급증했다. 현재 판매 중인 2023년형 모델은 8010만원, 약 300만원이 인상됐다.
표면적으로는 불안한 세계 정세와 원자재 비용 급등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들 브랜드들이 가격을 인상하는 것에는 고급화 전략을 꾀하며 수익성을 높이려는 게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규 미국 브랜드인 GMC의 경우도 미국 내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최상급 사양 모델만 들여왔다. 일반적으로는 하위 트림을 없애고 최상위 트림을 추가하는 방식이 가격 상승을 유도하고 있기도 하다.
전략적인 면에서, 제품의 절대적인 가치가 높아진다면 가격 인상이 합리적인 것이 당연하다. 다만, 문제는 같거나 비슷한 모델에서 가격 인상폭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격폭이 가장 컸던 지프 랭글러의 2021년형과 2022년형 모델을 비교해 본다면 엔진 배기량, 변속기, 차체 사이즈 등 제원이 모두 동일하다. 300만원의 인상 폭이 있었던 올해 역시 상황은 같다.
믿는 구석은 미국차에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다. 특히, 오프로드나 풀사이즈 SUV, 픽업트럭처럼 거의 독점적 시장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차종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고가의 차는 많이 팔리는 양극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이는 특히 수입차 시장에서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미국차는 지난해 2만4995대 판매로 시장 점유율 8.8%의 비중에 그쳤다. 전년 11.1% 대비 2.3%p가 줄었다. 독일차에 점유율을 내주고 있는 것도 수익성에 매달려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한편, 최근 지프 브랜드는 경쟁력 회복을 위한 물림 수를 썼다. 제품 가격을 최소 6.1%에서 최대 10.1%까지 낮췄다.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지만,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샀던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