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디지털 장비를 갖춘 신차를 타고 있는 A씨, 최근 잦은 시스템 오작동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어떤 때는 에어컨이, 또 어떤 때는 라디오가 먹통이다. 시동을 껐다가 켜면 다시 정상 작동하는데, 심각한 결함이 아니라고 여겨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다. 최근 이런 사례들이 많아졌다. 제조사들이 내연기관 차에서 전기차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차량 소프트웨어(SW)에서 발생하는 오류 횟수도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의 조사 결과 자동차 SW 관련 결함 건수가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회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수입 완성차 업체의 차량 소프트웨어 관련 리콜·수리 건수는 7년 전인 2016년 26건에 불과하던 것이 점차 늘어나 2018년 108건, 2020년 228건, 지난해에는 277건이 등록됐다. 올해 역시 1~5월 총 135건이 발생했다. 비중으로는 따지자면 전체 리콜·무상수리의 11.4%에서 이번에 42%로 급증했다. 결함 건 2대 중 1대는 SW 관련이라는 뜻이다.
확실히 잔고장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차량 내 대부분 기능을 중앙시스템이 담당하면서 과부하가 걸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리적 버튼들이 삭제되면서 메인 화면에서 컨트롤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는데, 화면이 먹통이 되면 조작이 전혀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시스템을 리셋하면 원상복구가 될 때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일반 PC에서 발생하는 버그 현상과도 비슷하다.
시스템이 통합돼 가면서 복잡해지는 연산 방식에 오류가 더 자주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더 고도화된 계산 체계가 필요하게 되는 이유다. 최근 기아의 레이 등 6개 차종도 계기판 SW 문제로 차량의 계기판 화면이 표시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해 약 4만8025대의 차량이 자발적 시정 조치에 들어간 바 있다. 이들은 상시 오류가 아니라 빈번한 오류로 인한 결함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리셋을 해도 정상 작동이 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예를 들면 최근 테슬라 모델S 등 2개 차종에서는 배터리 관리장치 SW 오류로 배터리 상태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주행 중 동력이 차단되고, 이로 인해 차량이 멈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된 경우다. 이는 시스템 호환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스템 설정 오류가 발견되는 때도 있다. 최근 포드는 레인저 와일드트랙에서 계기판 SW 설정 오류로 후측방 사각지대 경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경고가 표시되지 않아 차로 변경 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현대 그랜저 GN7 HEV에서는 전자식 브레이크 SW의 설정 오류로 스마트 크루즈컨트롤 기능 주행 중 오르막 경사로에서 앞 차량 정차로 인한 차량 정차 시 후방 밀림 현상이 발생한 적도 있다.
SW 결함 사례들은 제조사 불문, 장소 불문, 불시에 나타날 때가 많다. 시민회의가 제시한 건수로만 살펴보더라도 현대차·기아 위주로 국산 차종 7종에 테슬라, 벤츠, BMW, 폭스바겐, 포르쉐 등 인기 수입차 16종이 SW 관련 건수로 리콜이 진행됐다. 특히 그랜저(GN7)은 지난 5월까지 누적 14건의 사후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 가운데 10건(71%)이 SW 문제였다. 수입차에서는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벤츠 E-클래스 역시 리콜 중 52%가 SW 관련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회의는 “차량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편의 기능과 SW 업데이트를 통한 리콜 및 보증 처리 등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면서도 “SW는 하드웨어와 달리 문제를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고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SW 관련) 잔고장이 빈번하면 불신과 피로감이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차량 소프트웨어 개발도 중요하지만, 차량 출고 전에 엄격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문제 발생 시 빠른 사후 대처로 소비자가 안심하고 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