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거익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에는 큰 차를 선호하는 트렌드다. 좁은 도로와 주차 공간 때문에 나오지 않을 것 같던 풀사이즈 SUV도 나왔다. 현대차도 신형 싼타페 크기를 대폭 키웠다. 자동차 크기는 전 분야에 걸쳐 조금씩 커져 왔다. 다만, 차가 커질수록 기존 세그먼트에 있던 차종이 겹쳐지는 시장 간섭 현상이 발생한다. 제조사들은 이에 대해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 크기가 달라지면서 세그먼트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고 같은 제조사 제품 라인업 중 비슷한 차종들의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안전하고 편안한 차를 갖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까지 더해져야 이상적이다. 하지만, 후자는 둘째 치더라도 자동차 가격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크기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요즘 제조사들의 자동차 개발 방향이 심각하게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다. 변화의 주기도 빠르다는 것은 문제다.
보통 글로벌 제조사들은 빈틈 없이 다양한 크기의 차종으로 라인업을 구성한다. 예를 들어 벤츠의 경우 알파벳으로 차의 등급을 매긴다. A클래스는 가장 작은 엔트리급, B와 C 등 알파벳이 올라갈수록 차도 커지고 고급스러워진다. BMW도 마찬가지다. 1시리즈부터 현재 8시리즈까지 존재한다. ‘G’나 ‘X’를 써서 차종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소비자 요구가 더 큰 차에 매몰되다보니 이런 차량의 등급이 겹쳐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지금의 A-클래스와 1시리즈의 현재 크기는 수년 전의 C-클래스, 3시리즈 크기와 비슷하게 커졌다. 스펙트럼을 넓히기도 한다. 올해 초 출시해 한참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기존 트랙스 SUV와는 달리 ‘크로스오버’라는 타이틀로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갖추게 됐다. 이에 따라 비슷한 크기의 트레일블레이저의 판매량을 다소 반감시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얼마 전 출시한 현대차의 디 올 뉴 싼타페는 기아 브랜드의 쏘렌토와 시장 간섭 현상이 우려됐다. 파격적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면서 차체 크기도 준중형급에서 중형급으로 커졌다. 3열 시트를 갖추면서 차량의 정체성도 바뀌었다. 원래 중형급에 있던 쏘렌토는 부분 변경을 이뤘지만, 차체 사이즈 변경은 크지 않다. 중형차급을 보던 소비자는 디 올 뉴 싼타페로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흔히 차체가 아닌 옵션의 경우는, 우스갯소리로 “경차 사러 갔다가 그랜저 사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품 구성을 어중간하게 해두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차체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다. 내게 필요한 차를 사러 갔다가 좀 더 큰 차를 구매하는 꼴이다. 현대차의 베뉴와 코나, 그리고 기아 셀토스와 니로, 혹은 베뉴와 셀토스, 코나와 니로 등의 선택지에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굳이 격을 따지지 않는다면 현대차 팰리세이드와 기아의 모하비와도 고민이 될 수 있다. 이들 성향이 조금씩 다른 차들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본다는 설명도 있다. 예를 들어 대형 SUV 시장에서는 ‘현대차·기아가 강세다’라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토요타는 자국 내 여러 자동차 브랜드와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경차나 미니밴을 하나 개발하면 미쓰비시, 다이하츠 등 여러 브랜드와 플랫폼을 공유하게 된다. 이들 플랫폼은 차체 크기 조절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로 경차로 개발을 많이 하며, 경차 판매가 많은 현상도 이런 이유로 볼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분위기는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차들은 물론 비싸고 큰 차들이 유행을 타고 있다. 선호 차종, 크기 등이 한곳으로 쏠리면 세그먼트 내 선택지는 많아지지만, 전체 시장의 다양성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