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20주기인 올해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가 출시되며 한국 자동차 산업 성공 신화의 2막을 열었다.
아이오닉 5 외관에는 46년 전 탄생한 '포니'가 녹아 있다. 국내 최초의 4도어 패스트백(자동차 지붕 뒤쪽에서 차체 끝까지 완만하게 떨어진 형태) 세단인 포니는 디지털 감성을 두르고 아이오닉 5로 부활했다.
◆첫 독자 생산 '포니', 성공 신화 첫 장에 기록되다
1976년 출시된 포니는 한국 최초의 독자 생산 모델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기술이 한참 앞선 일본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로 만들어졌다. 현대차는 미쓰비시로부터 플랫폼과 엔진을 들여왔고 디자인은 이탈리아에서 명성이 높은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맡겼다.
기술과 자본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완성차를 생산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박과 다르지 않았다. 해외 선진 기업은 '한국이 무슨 수로 자동차를 만드느냐'라는 반응이었고 내부에서도 포니 생산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정주영 명예회장은 '하면 된다'라는 모험가 기질로 울산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세웠다.
우려와 달리 포니 초기 모델은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조랑말'이라는 뜻을 가진 생소한 한국산 자동차가 세계 무대에 데뷔한 순간이다. 이후 포니는 1990년까지 3도어 해치백, 5도어 해치백, 그리고 픽업트럭까지 다양한 파생 모델로 생산됐다.
◆정주영의 '자립' 의지, '엑센트'로 피어나 '매출 100조' 열매
정주영 명예회장은 완전한 자립을 꿈꿨다. 엔진·변속기로 이뤄진 파워트레인(동력장치)은 물론 자동차의 뼈대인 플랫폼까지 순수 독자 기술로 만들기 원했다.
기술 자립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1970~80년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은 미국 측으로부터 독자 개발을 포기하는 게 어떻느냐는 압박도 받았다고 전해진다. 현대차에 기술을 제공한 미쓰미시의 견제도 심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일생 동안 번 돈을 다 써서 망하더라도 자립을 포기할 수 없다"라고 여겼다. 현대차는 경기 용인군 마북리에 연구소를 짓고 인재를 영입해 자체 엔진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포니 출시 20여 년 만인 1994년 첫 독자 개발 엔진인 '알파 엔진'을 탑재한 '엑센트'가 탄생했다.
현대차는 지난 2019년 매출 105조 7904억 원을 거두며 '100조 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브랜드 가치가 글로벌 완성차 기업 '톱(Top)5'를 기록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완성시킨 한국 자동차 산업 성공 신화 1막의 최종장이 완성된 셈이다.
정주영 명예회장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포니를 계승한 '아이오닉 5'로 2막을 쓰기 시작했다. 정주영 명예회장 20주기를 맞아 3대를 거친 도전 정신이 '100년 기업 현대차'를 만들어 낼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