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CR-V가 6세대 완전변경 모델로 돌아왔다. 글로벌 베스트 셀링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노재팬 타격으로 모양새가 떨어졌었다. 온라인 판매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는 있지만, 역시 뭔가 역부족이다. 출시 행사도 제대로 못 한 상황에서 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사심 털고 제품만을 본다면 이번 CR-V는 충분한 상품성을 갖췄다.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승차감과 내구성만큼은 동급 어느 차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실용적인 SUV를 찾는 고객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하는 차다. 특히, 내구성에 대한 신뢰가 깊다면 다른 선택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내구성은 짧은 시승으로 확인할 수 없다. 대신, 입증된 예들이 바탕이 된다. 전문 평가기관도 있지만, 자동차 전문지에서는 자체 테스트나 고객 평점 분석 등을 통해 내구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CR-V는 항상 다수의 전문지 평가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다. 물론 거기엔 ‘가격 대비’라는 조건이 붙긴 했을 것이다.
프리미엄 제품군에 차를 탈 때는 내구성을 잘 따지지는 않는다. 기본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소재의 문제지 기술력의 차이는 아니라서다. 프리미엄 부문에서는 신차 평균 교체 주기가 3.5년 정도로 짧다는 이야기도 있다. 혼다 CR-V는 딱 실용적 구간에 있는 차라 비교적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중고차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말도 같은 얘기다.
실제 시승 느낌도 나쁘진 않다. 시승하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승차감이다. 아주 고급진 에어서스펜션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도 세단과 같은 편안함을 전달한다. 시트 포지션이 대체로 낮다는 느낌이 때문이다. 전방 시야가 낮은 건 아니다. 다른 SUV들만큼이나 눈높이가 높다. 쉽게 말하자면 눈은 SUV에 타고 있지만, 몸은 세단에 타고 있다는 일종의 착각이다.
주행 느낌도 부드럽다. 동급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1.5리터 가솔린 엔진은 190마력의 힘을 내며 크기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출력을 선보인다. 24.5kg·m의 토크 수치는 왠지 탐탁지 않지만, 그런데도 가속은 여전히 기대 이상으로 부드럽다. CVT(무단 변속기) 덕분인지 거치적거리는 느낌이 전혀 없다.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원하는 양의 힘을 내면서도 울컥거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물론 과격한 대시가 끌리지는 않는다. 센터콘솔 앞에, 뭉텅하게 크게 솟아 올라와 있는 기계식 변속 레버에 ‘S(스포츠)’ 모드가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측면에 주행 모드 변경 다이얼이 있기도 한데, 여기서는 ‘에코’와 ‘노멀’, 그리고 ‘스노우’로만 변경된다. 도로 환경에 초점을 둔 구성이다. 실제 눈밭을 달려볼 일은 없었지만, 사륜구동 흉내를 내려 노력을 했다는 점은 높이 사 줄 만하다.
앞서 언급했듯 앉은 자세가 세단과 같은 느낌이라 코너링에 과격하게 접어들더라도 SUV와 같은 불편함이 없다. 국산차가 약한 부분이다. 안정적으로 돌아나가며 곧바로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다.
전방을 바라보는 시야는 가운데 9인치 터치식 모니터에도 자주 머문다. 우측 깜빡이를 켤 때 특히 그렇다. CR-V는 우측으로 차선 이동, 혹은 램프를 빠져나갈 때 자칫 가려질 수 있는 사각지대를 이 화면에서 보여준다. 우측방 도로 상황을 카메라가 담아내는 것이다. 이 기능은 잠시나마 신선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이내 내비게이션이 필요할 때는 금세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된다. 자칫하면 고속화 도로에서 출구 놓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차의 것과 자꾸 비교되니 개선될 것이 아니라면 기능을 꺼두는 게 답이다.
6세대 혼다 CR-V의 가격은 4190만원,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그만큼 할인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제품 판매를 모두 정찰제, 온라인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판매 차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행보는 오히려 소극적 마케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