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를 표방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차체는 높지 않다. 세단의 실루엣을 갖고 있어서다. 옆에서 보는 뒷모습은 쿠페다. 요즘엔 이런 차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라고 부른다. 유심히 쳐다보고 있으면 지상고가 높은 걸 눈치챌 수 있다. 5m에 가까운 긴 전장을 갖고 있지만, 실내 공간은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는다. 어림잡아 쏘나타 정도? 패스트백 뒤통수 때문인지 그보다 더 좁아 보인다. 머리 공간만 움푹하게 들어간 영리한 방법을 썼지만, 무릎 공간에 신경이 쏠려 효과는 크지 않다. 실제로 축거(軸距)는 쏘나타 디 엣지(2840㎜)보다 10㎜밖에 길지 않고 신형 그랜저(2895㎜)보다는 45㎜가 짧다. 크기를 비교하니 정체성이 더 모호해진다. 어찌 보면 다행. 현대차와의 정면충돌은 피한 셈이다.
토요타 크라운은 여러모로 이목을 끌고 있다. 브랜드와 역사를 함께한다는 등(16세대를 이어온 것도 그렇다), 게다가 일본 내수 시장 전용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점, 판형을 달리해(큰돈이 든다고 한다) 크로스오버 및 왜건 등 독특한 방식으로 총 네 가지 파생 버전을 마련했다는 등 얘깃거리가 많은 차다.
우선, 이 차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끝이 없다. 최근 현대차가 ‘포니’로 복고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토요타에서는 크라운이 옛 추억을 되살리는 셈이다. 두 차 모두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라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가진 두 그룹이 지속가능성을 이뤄내는 데 꼭 필요한 일이다.
전략은 조금 다르다. 크라운은 이번 그랜저처럼 옛 모델과 오버랩되지는 않는다. 명칭만 혈통을 지킬 뿐 부모 세대와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다. 닮은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네 가지 스타일 변화. 이제는 가격 경쟁만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없다는 걸 안 것이다.
어쨌든 국내에는 크로스오버 모델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외관은 신선하다. 토요타는 식상할 때가 됐을 즈음 적절하게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적용했다. 전면부 후드에서 신형 프리우스의 느낌이 난다. 각진, 클래식한 느낌이 아니라 젊은 세대가 좋아할 법한 곡선 라인이 대부분이다. 존재감과 날렵한 이미지를 위해 그릴은 최대한 크게, 헤드램프는 최대한 가늘게 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그릴 크기를 너무 키운 것이 오히려 단조로움을 불렀다. 이후 페이스리프트 때 가장 먼저 손보게 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실내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게 크롬이 아닌 무광의 골드 색상 장식이다. 토요타에서는 이를 ‘웜 스틸(Warm Steel)’이라고 하는데, 나름 일리는 있다. 은근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다.
엔진 라인업은 2.5 자연흡기, 2.4 듀얼 부스터가 있다. 요즘 현대차 오너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2.5는 기대에 못 미친다. 에코, 노멀, 스포츠 세 가지 기본 주행모드가 제공되며 라이벌들과 비교해 특출남이 없다. 예상은 했지만, 반대로 2.5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낸다. 총 다섯 가지 주행모드로 영역별 느낌이 다채롭다. 쏘나타 디 엣지 그리고 쏘나타 디 엣지 N라인과 비슷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가격 차이는 있지만, 두 차종의 성능 차이는 크지 않다. 편의 장비 등에서 차이가 나지만, 인체공학적 설계 그리고 내구성 면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가격 차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바이폴라 니켈 메탈 배터리를 적용했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덕분에 퍼포먼스를 강조한 2.4 듀얼 부스터 모델은 6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248마력을 뿜어내면서도 11㎞/L의 연비를 달성했다. 그리고 2.5 하이브리드는 부드러운 e-CVT와 연동, 시스템 최고출력 239마력을 내면서도 17.2㎞/L의 복합연비를 자랑한다. 여기에 구동력 배분이 100:0에서 20:80까지 변한다는 E-Four 사륜구동 시스템은 기본으로 적용됐는데, 모든 속도 영역에서 안정적인 주행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제원이 상기시켜 주는 건 5000만원 초반, 6000만원대 구간으로 국산차와 크지 않은 가격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