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주행 감각은 10여년 전 느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부드럽지만 강하다. 남들은 타임리스 디자인을 추구한다지만, 벤츠는 차의 성향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벤츠가 그만큼 우수했다는 말이 되고 ‘최고’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시승차 E 350 4매틱을 받고 복잡한 도로에서 한적한 도로까지 달려봤다. 윈드스크린에 굵직한 빗방울이 내려쳤지만, 온몸의 감각은 오히려 발끝에 쏠려 있었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면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터보 래그나 노즈 다이빙 같은 싸구려 감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4매틱 사륜구동 시스템 덕분인지 젖은 노면에서도 네 바퀴의 접지력은 탁월하다. 과격하게 대시해도 어느 한쪽이 ‘떴다’는 느낌은 없다. 운전자를 감싸는 시트는 맞춤형으로 제작한 듯 매우 편안하다. 꼭 버킷 시트가 아니더라도 이 역시 모든 고객을 고려해 최적의 상태를 찾아낸 듯하다.
물론, 벤츠라고 다 똑같은 벤츠는 아니다. 벤츠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E-클래스다. 좋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를 대표하는 E-클래스는 역사적으로 봐도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어온 주역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표방하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가성비가 넘쳐서가 아니다. 기자가 판단하는 E-클래스는 극한의 밸런스를 자랑한다. 퍼포먼스는 BMW 5시리즈의 느낌을 따라갈 수 없다. 디자인은 사실 아우디 A6가 더 세련되고 젊은 느낌이다. 첨단 편의사양은 어떤가? 어떻게 보면 제네시스를 따라올 브랜드가 없다. 이렇게 따로 모두를 떼어놓고 봤을 때 E-클래스는 특출난 것이 없지만, 모든 성향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완벽에 가까울 정도다. 바로 E-클래스의 인기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2023년식 E-클래스, 그중에서도 상위 트림에 속하는 E 350 4매틱이다. 가격은 기본 9170만원(시승차는 AMG라인으로 9410만원). E-클래스 E 250 모델 시작 가격과는 2120만원 차이가 난다. 비싼 만큼 제값을 해야지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심장은 달라도 DNA는 변하지 않는다. 앉아있는 시트의 포지션도 몸에 꼭 맞춘 듯 안락함과 시야를 제대로 확보했다. 달라진 디지털 클러스터는 알맞은 정보들을 제자리에 집어넣어 깔끔하게 보여준다. 계기판과 메인 디스플레이는 대시보드가 살짝 덮어 어색하지도 않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달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역시 깔끔하게 시인성이 좋다. 스티어링 휠 양쪽 모두 더블 스포크도 버튼들을 담고 세련된 디자인을 보여준다.
E 350 4매틱은 직렬 4기통 2.0ℓ 배기량에 9단 자동변속기가 연동돼 최고출력 299마력, 최대토크는 40.8㎏·m를 발휘한다. 기본형 E 250도 부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E 350 4매틱의 출력과 토크는 중형 세단에서 가장 이상적인 수준이다. 상위 트림에 E 450 4매틱이 있는데, 가격은 1억1570만원이다. 직렬 6기통 최고출력 367마력, 51.0㎏·m의 최대토크를 발휘, 제로백 5초를 끊는 모델이다. 이 정도면 일반 세단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으니 로드 머신으로 보는 것이 맞다. 결국 퍼포먼스도 꼭 맞춘 세팅에서 왔다는 뜻이다.
거슬리는 부분은 내비게이션이다. 무선 충전기는 있지만, 유선으로 연결해 애플 카플레이를 연동한다. 하지만 E-클래스에서는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이 들어가 있다. 유용하게 이 기능을 사용하고 싶으면 자체 내비게이션을 그대로 써야 한다. 증강현실은 초기 버전에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던 거 같은데, 주요 포인트에서만 화살표를 띄워주는 게 인상적이다. 도로명이 실제 표지판처럼 보이게 한 것도 마음에 쏙 드는 부분이다. 또 하나 너무 배려가 깊어 아쉬운 부분도 있다. MBUX 시스템을 띄워주는 터치스크린에서, 그리고 콘솔박스 앞에 있는 터치패드, 어느 것을 선택하든 똑같은 입력 방식이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싶다. 편의성을 생각한다면 터치패드가 옳겠지만, 사용 방법은 터치식이 더 익숙한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