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칼레는 한때 기블리를 통해 누렸던 마세라티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한다. 디젤의 기블리. 1억원의 가격표를 달고도 싸다는 말을 들었다. 럭셔리 이미지 탓이다. 그런 기블리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번에는 SUV 타입에다가 디젤 대신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달았다.
지난 몇 해 동안 마세라티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페라리의 그늘에서 벗어난 것이 가장 크다. 파워트레인을 바꾸고 새로운 모델을 내놓고 좀 더 예전의 마세라티다움을 추구할 수 있게 됐다. 그레칼레는 르반떼의 뒤를 이어 마세라티의 새로운 전략을 실행하는 모델이다.
탁월한 성능, 스타일리시한 라인과 캐릭터, 최상의 품질이 담긴 인테리어, 엄선된 마감재까지 두루 갖춘 차라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1억원 언저리에서 시작하는 프리미엄 가격에 프리미엄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비슷한 가격대의 동급 모델들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먼저 떠오른 차는 포르쉐 마칸이다. 두 차가 모두 장단점이 있다. 디자인이나 고급감은 비슷하지만 주행 감성에서는 차이가 있다. 마칸이 후끈하게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이라면, 그레칼레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다. 이름의 유래도 비유한 탓에 난해할 수 있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그레칼레는 지중해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라는 어원이 있단다.
기술의 완성도만 본다면 약간의 차이로 마칸이 더 높은 편이다. 그레칼레는 저속 가속에서 울컥거림이 조금 느껴졌다. 그래도 대단한 장점이 있는 차다. 바로 매력적인 엔진음이다. 직접 듣지 않고서는 잘 알 수 없다.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모터사이클에 앉은 기분이다. 물론 진동은 없다. 효율성을 위해서인지 작은 배터리를 탑재했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다만, 스톱-스타트 기능은 엔진음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다.
승차감이 나쁘지는 않다. 시승차에는 에어 서스펜션(옵션)이 적용됐다. 하지만 승차감보다는 부드러운 주행 느낌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미끄러지듯 출발한다. 같은 조건이라면 저항이 마칸보다 적은 편. 제동력도 그에 잘 맞춰져 있어 운전이 한결 편안하다.
그레칼레는 ‘GT’라는 주행 모드를 제공한다. 페달 맵을 통해 효율성을 저하하지 않고도 구조화된 가속이 가능하다고 한다. 변속은 매끄럽고 일정하게, 엔진 부스트는 보통으로 킥다운과 페달 감도를 중간 정도에 맞춰져 있다. 실제 체감도는 낮지만, 효율성만큼은 더 나아 보인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매우 경쾌하게 달린다. 가속 반응은 빠르고 스티어링 휠의 답력도 높아지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도심형 SUV인 것을 생각하면 ‘오프로드’는 의외다. 하지만 에어 서스펜션을 적용한 만큼 다양한 활용도 반길 수 있는 부분이다. 오프로드에서는 변속 타이밍이 살짝 바뀌고 지상고가 20㎜ 정도 높아진다.
그레칼레는 세 가지 모델로 나온다. 300마력을 제공하는 4기통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이 달린 GT, 330마력 4기통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의 모데나, MC20 네튜노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530마력 고성능 V6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트로페오다. 가격대는 1억3000만원대. 시승한 모델은 모데나로 GT에 비해 전폭이 30㎜가 넓어 스포티한 외관을 강조한다.
실내에서는 MIA(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트)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센터페시아에 있는 크지 않은 화면에서 구현된다. 화면이 꼭 클 필요는 없다. 사용 난도도 낮고 시인성도 좋다. 독특한 점은 스마트폰 티맵 내비게이션을 연동해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로 화면을 띄우는데, 안내만이 아니라 지도가 통째로 나온다는 것. 살짝 주의가 산만해질 수 있겠으나 길 잃을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