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9월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세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던 현대차그룹을 10년 내 글로벌 Top5에 안착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공염불 정도로 여겨졌던 이 약속은 딱 10년 뒤인 2010년 정확하게 이행됐다. 현대차그룹이 세계무대에서 574만대를 판매하며 글로벌 판매량 5위로 올라섰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경영'의 덕분이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무대에서 '달리는 냉장고'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나지 못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에 결단을 내렸다. 2000년 4월, 현대차 과장급 이상 임직원들에게 '결함 발견 시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제출받은 것이다.
당시 현대차는 미국에서 선보인 트라제XG가 6개월 만에 5차례 리콜을 받은 것은 시작으로 베르나와 EF소나타 등 거의 모든 차량들에 대한 리콜이 잇따랐다.
이에 정 명예회장은 "지금까지는 문제 삼지 않겠다. 하지만 향후 신차는 품질 문제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에 임직원들이 '각서'를 통해 각오를 다진 것이다.
사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 경영을 맡기 전부터 '품질'을 강조해왔다. 과거 그가 직접 경영을 맡았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현대자동차써비스(현 현대차)에서 품질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99년에 표준협회장으로 취임하며 "표준화와 품질경영을 산업현장에 보급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그였으니 당연히 현대차의 품질불량은 고민거리였고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정 명예회장은 이에 따라 1999년 현대차에 '품질합격제도'를 신설했는데, 상품기획단계부터 생산과 판매에 이르는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고, 이 목표를 달성해야만 다음단계로의 진행을 허가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생산라인을 멈추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품질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대차는 2000년 이후 달라진 제품력을 바탕으로 미국 소비자들의 눈길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자동차평가기관인 제이디파워(JD파워)에 따르면 현대차는 1999년 '어필' 부문 조사에서 전체 37개 제조사 중 3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0년 34위, 2001년에는 30위, 2002년에는 28위로 순위가 올려갔다. 그리고 2003년에는 21위로 점프했다.
이런 노력은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회장에게도 이어졌다. 정 회장은 경영수업을 받던 때부터 독자경영에 나선 이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생산라인을 방문해 품질경영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 '달리는 냉장고'란 혹평을 받았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JD파워 내구품질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기아가 1위를, 현대차가 3위, 제네시스가 4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15개 완성체메이커 중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정 명예회장의 품질경영이 아들인 정 회장 대에 이르러 드디어 열매를 맺은 것이다.
미국 현지매체인 폭스뉴스는 이에 대해 "기아가 새로운 왕이다(Kia is the new king)"이라고 보도했으며, 포브스는 "한국브랜드가 내구성 신뢰도 평가를 지배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