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지금은 승승장구하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새로운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짐 래트클리프 이네오스 그룹 회장이 ‘오프로드’라는 비주류에 연연하지 않고 만들어낸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다. 이 차를 국내 판매하고 있는 차봇모터스 정진구 대표이사를 만나 마케팅 전략을 들어봤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영국 정통 오프로더 차량을 제작하는 차 브랜드다. 이네오스 석유화학 회사의 자회사다. 현재 그레나디어라는 모델 한 종을 내놓고 판매를 하고 있다. 국내에는 지난해 브랜드 론칭을 했고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본계약에 들어갔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 차 바닥에서는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꽤 많은 골수 ‘차쟁이’다. 그는 자동차 전문지 기자부터 시작했다. 이후 한 수입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지금 하는 일의 대부분을 배웠다. 개인적으로도 지프 랭글러를 소유했었고 랜드로버 브랜드 차를 좋아하는 오프로드 마니아이기도 하다. 오랜 지인들과 함께 기회를 봤고 이네오스에 접촉, 공식적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아직 해외에는 우리가 모르는 차 브랜드들이 많지만, 이런 부분에서 그가 이네오스를 선택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이네오스를 만나보게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취미 생활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덕업일치를 이루려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정 대표는 글로벌 이코노믹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니치 마켓을 노린다고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프로드 차들은 태생부터가 주류가 될 수 없다. 한때 지프 브랜드가 대표 차종 랭글러를 앞세워 1만대 클럽에 들었던 적이 있지만, 캠핑 등 SUV의 열풍이 불며 곁다리로 얻어걸린 호사였다. 가격도 착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격표로 대중화를 이끌 수 있을 만한 시기도 아니다. 업계에서 요즘 통하는 전략은 ‘고급화’와 ‘니치마켓’이다.
그레나디어 사전 예약은 성공적이다. 넉 달 치 선주문을 받은 상태다. 정 대표는 “본사의 방침상 목표치 등을 정확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의 매력을 알아봐 주고 있는 것 같다”며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고객 인도에 들어가니 대대적인 홍보활동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네오스의 대표 차종 그레나디어는 오프로더들 중간쯤에 포지셔닝이 된다. 적어도 기자에게만은 그렇다. 디자인은 수집가들의 마음을 뒤흔들게 잘 생겼다. 여러모로 랜드로버 특히 디펜더와 비교되지만 미국 차들의 터프한 이미지를 더 깊게 갖고 간다. 오히려 디펜더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안팎으로 자유롭게 받아들였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정 대표는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이박, ZF 변속기, 빌슈타인, 카라로 등 회사들의 제품을 대거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것만 보더라도 들어간 부품만 본다면 어벤저스급”이라며 “디펜더처럼 에어서스펜션이나 편의장비나 첨단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차의 특성에 꼭 맞는 최상의 부품들만 모아 집어넣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이 ‘평생 보증’을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의 근간이 된다.
이쯤 되면 가격이 걱정된다. 1억990만원부터 시작,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돈씨’를 망발할 터다. 하지만 우리는 1억160만원부터 시작하는 BMW X5, 1억3200만원부터 시작하는 벤츠 GLE를 두고 비싸다고 하지 않는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 실적을 살펴보면 하위권 브랜드에 캐딜락, 벤틀리, GMC,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등이 있다. 대중적이라기보다 모두 고부가가치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다. 실적은 평균 400~500대 정도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오프로드를 표방하는 지프와 랜드로버는 각각 지난해 4000~5000대를 판매했다.
이런 마켓 현황을 볼 때 신규 브랜드에 가격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첫인상과도 마찬가지다. 피아트, 미쓰비시 등 많은 수입차 브랜드가 까다로운 한국인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 물러났다. 정 대표의 말에 따르면 국내 수입되는 그레나디어의 가격은 글로벌 모델들과 비교해봐도 싼 가격에 가져온다고 한다. 마진이 다른 하이엔드급보다는 적게 남을 거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네오스는 아직 이미지 구축 단계다. 차근차근 시장 내 인지도를 끌어내고 니치마켓을 정확하게 공략하는 전략, 그 전략의 성공 여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포르쉐의 성공사례가 눈에 밟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