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스포츠카 브랜드 로터스가 첫 전기 SUV 모델인 '엘레트라(Eletre)'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예전의 로터스는 없다. 영국의 상징적인 자동차 제조사로서 '경량화와 민첩함'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자존심을 지켜온 로터스는 이제 전동화라는 이질적인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새로운 도전의 국면을 맞이했다. 기존의 로열 고객층을 타깃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로터스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새로운 부자들을 만날 것인지 말이다.
엘레트라는 로터스의 최초 전기차 모델답게 첨단 전기 파워트레인 기술을 도입해 최고출력 900마력 이상을 자랑하게 됐다. 마치 늘어난 무게를 출력으로 만회하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차량의 하부에는 112kWh 용량의 대형 배터리를 탑재해 약 463km에 달하는 주행거리를 제공한다. 상위 ‘R’ 모델의 경우 정확하게 918마력, 제로백은 단 2.95초 만에 가속할 수 있는 성능을 제공하지만, 이번에 기자가 탑승한 시승차는 ‘S’ 모델로 최고출력 612마력 제로백 4.5초를 기록한다. 배터리 용량이 큰 만큼 오랜 충전 시간을 예상하지만, 800볼트 초급속 충전을 지원해 10-80%를 20분만에 충전한다. 전기차 시장에 놓고 본다면 꽤 훌륭한 스펙이다.
하지만, 운전의 재미는 다른 얘기다. 차가 크면 민첩성이 떨어진다. 방향 전환에도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엘레트라는 차체 길이가 5m가 넘고 휠베이스가 3m가 넘는다. 전륜과 후륜에 각각 장착된 듀얼 모터는 네 바퀴에 독립적인 구동력을 제공하면서 정확한 핸들링과 주행 안정성은 확보했지만, 소위 말하는 도로 위 칼질하듯 달리던 때는 잊는 것이 좋다.
대신 실내 공간은 확보는 확실하게 했다. 5인승과 4인승 모델로 후자는 뒷좌석 2개의 독립 시트가 마련되는데 꽤 럭셔리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작디작은 돌 알갱이만 밟아도 엉덩이가 들썩이던 2인승 스포츠카를 연상하는 순수 로터스 추종자들은 완벽하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이질감은 오래가지는 않는다. 포르쉐가 파나메라 혹은 카이엔을 내놨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된다.
대신, 로터스의 DNA를 받아들인 부분은 디자인에서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공기역학적인 설계다. 디자인에서만큼은 독보적이다. 시장 어디에서도 닮은꼴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보닛에서 내려와 그릴로 관통하는 에어 인테이크, 리어 휀더에서부터 리어 램프쪽까지 이어지는 에어 플로우는 다운포스를 제공하며 조금이나마 효율성을 높여주는 요소로도 각인된다. 독특하고 멋들어지게 생긴 것이 먼저 다가오지만 말이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차별화는 실내에서도 묻어난다. 양쪽으로 갈라진 대시보드나 세로 폭이 좁은, 디지털 클러스터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시도이면서도 전혀 불쾌감이 없다. 게다가 사용 편의성까지 챙겼으니 섣불리 지적질을 해댈 수는 없다.
엘레트라는 럭셔리 전기 SUV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대인 1억7900만원부터 시작해 가성비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살짝 연막이라고 생각된다. 포르쉐처럼, 옵션질이 조금 들어갔다. 후륜 조향 기능이라든지 다이내믹 패키지 등이 모두 선택 사양이며, 뒷좌석 독립시트 구성도 대략 1200만원이라는 웃돈을 붙여야 한다. 그래도 포르쉐와 가격 비교에서는 우위가 있는 건 사실이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대형 터치스크린,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최신 기술도 아쉽지 않게 대거 탑재된 것은 지향점에 잘 맞아들어간다.
엘레트라는 전통적인 로터스의 고성능 이미지에 현대적인 편의성을 결합한 것이다. 중국 자본의 지원을 받으며 탄생한 엘레트라는 이러한 기술과 럭셔리한 요소를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볼보가 중국의 지리 자동차에 인수된 이후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를 떠올리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