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자동차는 필수재이자 욕망의 대상이지만, 유독 미국산 자동차는 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 소비자들은 미국 자동차 대신 자국 생산 또는 다른 수입 브랜드 차량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실제 판매 수치를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명확해진다.
유럽자동차제조업협회(ACEA)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유럽연합(EU)에서 생산된 신차를 75만7564대 수입한 반면, EU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차량은 고작 16만9152대에 불과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EU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85억 유로(약 54조9000억원)에 달하는 반면, 유럽에 판매된 미국 자동차는 78억 유로(약 11조원)에 그쳤다.
이러한 극명한 차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세 장벽입니다. EU는 모든 승용차와 소형 트럭 수입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까지 유지했던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2.5% 관세와 비교했을 때, 미국 자동차가 유럽 시장에서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높은 가격, '넘사벽' 유지비에 외면
실제로 미국에서 인기 있는 대형 SUV인 쉐보레 타호의 경우, 미국 내 판매 시작 가격은 약 5만9000달러(약 8400만원)이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세금이 더해져 무려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에 육박한다. 프랑스에서도 6만490달러(약 8600만원) 수준으로, 미국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심지어 중고차 가격조차 마찬가지이다. FOX 비즈니스는 최근 2021년식 닷지 램 픽업트럭이 노르웨이에서 250만 노르웨이 크로네, 즉 약 23만5000달러(약 3억3000만원)에 판매되는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포드 레인저 트럭 역시 미국에서는 3만3808달러(약 4800만원)부터 시작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4만달러(약 5700만원)부터 판매된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는 미국에서 3만8490달러(약 5500만원)부터 시작하지만, 프랑스에서는 6만4830달러(약 9200만원), 독일에서는 6만 1990달러(약 8800만원)에 달한다. 쉐보레 콜벳 C8 스팅레이 역시 미국 판매가보다 유럽 판매가가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나마 예외적인 사례는 테슬라 모델 Y이다. 미국에서는 5만630달러(약 7200만원)부터 시작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비슷한 가격대인 5만1000달러(7270만원) 수준에 판매된다. 모델 Y는 2024년 한 해 동안 EU 국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유일한 미국 자동차였지만, 그마저도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됐다. 다른 대부분의 EU 국가에서는 미국산이 아닌 차량이 최고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특히 중국에서는 테슬라 모델 Y 가격이 3만 6430달러(약 5200만원)로,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저렴하다.
가격 외에도 미국 자동차와 경트럭이 유럽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는 다른 요인들이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차체의 크기와 무게다. 미국 자동차는 유럽 자동차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20% 더 무겁고 큰 경향이 있다. 이는 휘발유 가격이 미국보다 훨씬 비싼 유럽에서 유지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경제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7.19달러에서 7.57달러로, 미국의 최근 가격인 갤런당 3.22달러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센트럴 미시간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로버트 라이트는 "기름 탱크를 채우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한 심리적인 문제가 있다"며, "심리적으로 비용 때문에 큰 기름 탱크를 채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격과 유지비 외에도 유럽에서 미국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에 대한 오랜 편견이나 일종의 '속물 근성'도 존재한다. 라이트 교수는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 자동차가 비슷한 가격대의 유럽이나 동아시아 자동차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미국식 스타일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B. Riley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아트 호건 역시 "유럽 모든 곳에서 자동차는 더 작다"며, "그들은 거대한 SUV도 없고 대형 자동차도 없다. 이는 아마도 유럽에서 미국 자동차를 판매하는 데 있어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 작은 차체를 선호하는 경향은 유럽의 도로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럽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한 곳이 많아, 넓고 직선 위주로 설계된 미국 자동차에는 적합하지 않다. 호건 전략가는 "운전하는 동안 유럽 도로에 맞는 미국 차를 단 한 대도 못 봤다"고 단언했다. 또한, 주차 공간 역시 미국보다 훨씬 좁기 때문에 작은 차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자동차 안전 기준 역시 중요한 문제다. 유럽 도시 및 지역 협력 네트워크인 POLIS에 따르면, EU 안전 관련 법규는 미국보다 훨씬 엄격하다. 실제로 2013년 이후 유럽의 도로 사망자는 16% 감소한 반면, 미국은 오히려 25% 증가했다. POLIS는 특히 미국 픽업 트럭이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안전에 대한 이러한 우려는 일부 소비자들이 미국산 차량 구매를 망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라이트 교수는 "이 문제는 부분적으로 소비자의 믿음으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향은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세계 통합 무역솔루션(World Integrated Trade Solution)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판매된 미국 자동차는 3만3417대, 일본은 그보다 적은 2만8369대에 불과했다.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미국 자동차 판매량이 훨씬 더 저조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