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자동차 경량화의 핵심 소재로 각광받는 탄소섬유를 '유해 물질'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자동차 업계에 거센 파장이 예상된다. 14일(현지시각) 모터1에 따르면, EU 의회가 초안을 작성한 수정안은 탄소섬유를 납, 카드뮴, 수은, 6가 크롬 등 기존 유해 물질 목록에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스포츠카와 전기차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만약 유럽 의회가 이 수정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게 되면, 2029년부터 유럽 내에서 발효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업체를 비롯한 관련 기업들은 제조 과정에서 탄소섬유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는 전 세계 탄소섬유 사용량의 최대 20%를 차지할 정도로 탄소섬유는 차량 경량화에 필수적인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수정안은 폐기된 차량의 재활용 책임을 규정하는 EU의 폐기차량 지침(End of Life Vehicles Directive) 개정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EU는 탄소섬유 필라멘트가 공기 중에 떠다니며 사람의 피부에 접촉할 경우 유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 기관이 탄소섬유를 위험 물질로 간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의 발표 이후, 일본 탄소섬유 제조업체들의 주가는 즉각 급락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니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이번 탄소섬유 금지 조치로 인해 아시아 브랜드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레이(Toray Industries), 데이진(Teijin), 미쓰비시 케미칼(Mitsubishi Chemical) 등 일본 기업들은 전 세계 탄소섬유 제조 시장의 54%를 점유하고 있어, EU의 결정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유럽 역시 상당 부분의 탄소섬유 제조를 담당하고 있지만, 아시아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이번 금지 조치는 특히 무게 절감을 통해 성능 향상과 효율 증대를 추구하는 스포츠카 및 슈퍼카 제조업체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BMW, 현대자동차, 루시드, 테슬라 등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탄소섬유를 차체 및 부품 제작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어 이번 규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무게를 상쇄하고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 경량화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탄소섬유 시장이 2024년 기준 55억 달러 규모의 거대 산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EU의 수정안이 최종 법안으로 확정되기 전에 항공기 및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탄소섬유의 대체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곧 차량 성능 저하 및 생산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EU 설득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탄소섬유 '유해 물질' 지정 논란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 특히 친환경차 시대로의 전환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