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방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민감한 장소와 군사 훈련 기지 내에서 중국산 부품을 탑재한 전기 자동차(EV)의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16일(현지시각) i페이퍼의 보도에 따르면, 케임브리지셔에 위치한 RAF 와이튼(RAF Wyton) 공군 기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중국 기술로 제조된 전기차를 주요 건물로부터 최소 2마일(약 3.2km) 떨어진 곳에 주차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RAF 와이튼은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핵심 정보 허브로서, 국가 안보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최근 고위 관리들 사이에서 직원들이 운전하는 전기차가 추적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차량에 장착된 각종 센서를 통해 수집된 민감한 정보가 중국 베이징으로 전송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주요 군사 훈련 지역에서도 '중국산' 배제
국방부의 이러한 보안 강화 움직임은 경제성과 긴 주행 거리를 강점으로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BYD와 같은 중국 브랜드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 사용 제한 조치가 적용된 또 다른 주요 기지는 영국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장인 솔즈베리 평원 군사 훈련 지역이다. 이곳은 영국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훈련에도 사용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안보 시설이다.
대다수 제조사 '중국산 부품' 사용.. 논란 증폭
문제는 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BMW, 폭스바겐 등 대부분의 주요 EV 제조업체들이 차량에 중국산 부품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MG와 BYD와 같은 일부 브랜드는 차량 전체를 중국에서 제조한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관련 질의에 대해 제임스 히피 국방부 장관은 "중앙에서 의무화한 정책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특정 기지에는 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될 수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개별 방위 조직이 일부 현장에서 전기 자동차와 관련하여 더 엄격한 요구 사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보안상의 이유로 구체적인 세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는 영국 정부가 중국 소유 기업인 징예 그룹으로부터 브리티시 스틸의 경영권을 빼앗는 등 주요 기간 시설에서 중국 기업과 장비의 역할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또한, 중국이 영국 영토 내에서 스파이 활동과 사보타주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고 있다.
군 수뇌부, 전기차 내 대화 중단 지시까지
지난달에는 군 수뇌부가 전기차 내부에 장착된 마이크를 통해 군 관계자들의 대화 내용이 녹음되어 중국 제조업체에 전송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군 관계자들에게 전기차 내에서의 대화를 중단하라는 이례적인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알리시아 컨스 안보 담당 장관은 영국이 환경 친화적인 기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 안보를 "희생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강조하며, 정부가 군대와 의회를 넘어 전기차에서 "완전한 전환"을 이룰 것을 촉구했다.
전문가 "최신 EV, 잠재적 스파이 도구" 경고
전문가들은 최신 전기차에 탑재된 카메라, 센서, 레이더, 인터넷 연결 기능 등이 중국 공산당(CCP)과 협력하는 중국 기업의 원격 감시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이버 보안 전문가 제임스 보어는 전기차가 제조업체와 서비스 제공업체에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보고하고 있어 적에 의한 "오용"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보 소식통 역시 전기차가 차량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녹음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제 대부분의 자동차는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과거 고급 기능이었지만 모든 EV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직 고위 공무원 "EV는 바퀴 달린 센서 덩어리"
정부 시설 보안 담당 경험이 있는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현대의 전기차를 "기본적으로 바퀴 달린 거대한 센서 덩어리"라고 묘사하며, 외부 운영자에게 민감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모든 카메라, LiDAR, WiFi 액세스 포인트는 운전자 지원 또는 엔터테인먼트라는 합법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지, 어떤 데이터가 다시 전송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중국 EV 부품 제조업체들은 법적으로 민간 기업이지만, 중국 공산당의 국가 정보법에 따라 "국가 정보 업무를 지원, 지원 및 협력"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는 중국 기업이 수집한 데이터가 이론적으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접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방부는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수백 대의 중국산 전기차를 임차했지만, 내장 마이크를 통한 대화 녹음 및 전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3년에는 영국 정부 차량에서 위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중국산 추적 장치가 발견되기도 했다.
국방부 "엄격한 보안 절차 적용" 강조
국방부 대변인은 "국가 안보를 보호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본"이라며 "모든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보안 절차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 관계자들은 보안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 내 행동에 대한 지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차량의 유형이나 원산지에 관계없이 모든 차량에 적용된다.
한편, 볼보와 폭스바겐은 이번 사안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으며, BMW, BYD, MG, 재규어 랜드로버 등 관련 기업과 자동차 제조 및 거래자 협회, 중국 대사관 역시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