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 중고차 판매업자들은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상공인으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장)
국내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를 대변하는 두 단체 간 신경전이 뜨겁다. 한쪽은 제조사들이 직접 자사 브랜드 중고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대기업이 중고차까지 팔겠다고 나서는 것은 횡포라고 맞선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통해 중고차 판매업 진입 규제 완화 여부를 논의 중이다.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연 매출 1000억 원 이상 대기업은 해당 업종에 새로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수 없다.
이를 테면 연 매출이 100조 원 규모에 달하는 현대자동차는 아반떼나 쏘나타, 싼타페 같은 자사 브랜드 중고차를 소비자에게 판매하지 못한다. 이는 기아·르노삼성·쌍용·한국지엠도 마찬가지다. 국내 완성차 5개사 브랜드 로고가 박힌 중고차는 전문 상사나 거래 플랫폼, 할부 금융사 등을 통해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자동차협회)는 국산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려면 현대·기아차 같은 제조사들도 중고차를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반떼 중고차 품질을 현대차가 직접 관리하고 판매하면 소비자가 믿고 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진행한 '중고차 시장 소비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76.4%가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하고 혼탁하다고 답했다. 차량 상태를 믿을 수 없고 허위·미끼 매물이 판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경기도가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 3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등재된 매물 95%가 가짜였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국내 제조사와 달리 수입차 제조사는 자체 영업망을 통해 중고차를 판매한다. 예를 들어 BMW 5시리즈 중고차를 BMW코리아가 소비자로부터 사들여 정밀 점검과 정비를 거친 후 해당 차량 구매를 원하는 다른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일정 기간 무상 보증과 할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은 '인증 중고차' 제도다. BMW뿐 아니라 메르세데스-벤츠, 볼보자동차코리아, 렉서스 등 국내에 진출한 수입차 제조사 대부분이 인증 중고차를 시행 중이다. 이들은 인증 중고차 가격이 일반 상사에서 구매했을 때보다 다소 비싸지만 그만큼 매물의 질이 높다고 자부한다.
수입차 제조사들은 많게는 연간 수 조 원대 매출을 올리면서도 국내 제조사와 다른 유통구조 때문에 규제를 받지 않는다. 수입차 제조사의 한국 법인이 현지에서 신차를 들여와 '딜러사(판매사)'에 판매하고 딜러사는 자신들이 확보한 재고를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자동차협회는 "국산차는 인증 중고차 같은 제도가 없는 데다 성능 점검 부실, 객관적 품질 인증과 합리적 가격 산출 미비 등으로 중고차 시장은 물론 신차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차 업계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매매연합회)는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와 유통까지 담당하면서도 중고차 매매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선다. 중고차 판매만큼은 자신들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겨두라는 얘기다.
매매연합회는 또 "대기업이 양질의 중고차 매물을 선점하고 독점하면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매연합회는 또 미끼·허위 매물 등에 대해 "일부 범죄 조직의 문제이며 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매매연합회는 지난 1일과 9일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와 소규모 집회를 이어나갔다.
한편 정부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대신 완성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가 상생협약을 맺도록 양측을 조율 중이다. 상생협약 체결이 이루어지면 국내 완성차 제조사가 중고차를 직접 판매하되 일정 부분 제약을 걸어두거나 기존 중고차 업계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해법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