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TDI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디젤’ 엔진으로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다. 모든 제조사들이 전동화 전환에 나섰으니, 지금 나오는 디젤들이 마지막 유산이 될 수 있다.
소싯적 TDI는 디젤 엔진을 대표했다. 효율성과 퍼포먼스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끝없는 전성기를 누릴 것만 같았다. 시승 맛집의 원조 격이다. 덕분에 골프 TDI는 해치백의 교과서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내연기관 기술의 정점인 하이브리드를 꺾어 누르기도 했다. ‘디젤 vs. 하이브리드, 서울-부산 연비 경합’은 전문지 기자들의 레퍼토리와도 같았다. 디젤 엔진의 전염성은 크기·타입을 불문하고 빠르게 옮겨갔다. 이 중에서도 디젤 세단은 디젤 SUV와는 또 다른 감성이다. ‘편하고 조용한 디젤’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따라붙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택지는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국내 남아 있는 디젤 세단은 국산 포함해 모두 다 합쳐도 10종이 채 안 된다. 국산은 지난 2021년형 제네시스 G70 디젤 모델을 마지막으로 씨가 말랐고 BMW, 벤츠, 아우디 프리미엄 독일 3사 대표 차종에서 라인업 구색을 갖춘 몇몇 모델이 있다. 이마저도 판매는 되고 있지만, 대부분 어딘가에서 시간이 멈춰 있다. 이외 이리저리 뒤져 나온 디젤 세단은 폭스바겐 아테온과 푸조 5008과 재규어 XF가 전부다.
시승차는 아우디 35급 TDI와 같은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아우디 명명법으로 본다면 150마력에서 200마력 사이 최고출력을 낸다고 보면 된다. 차세대 EA288 EVO 2.0 TDI 엔진을 얹은 이번 아테온은 2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2021년형에서 멈춘 아우디 A6 35 TDI는 190마력을 내니 어쨌든 아테온의 TDI에는 개선이 있었다는 뜻이다.
10마력 증가로 실제 가속 능력에 체감도는 크지 않다. 최대토크가 이전과 같이 40.8kg·m로 묶여 있어서다. 대신, 서서히 속도가 오르며 발휘되는 기지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출력과 토크’라는 이론적 배경을 가감 없이 반영한 결과다. 잊고 있었던 것은 출발 시 작동하는 스톱·스타트 기능이다. 시승차는 시동이 걸릴 때 비교적 떨림이 컸다. 디젤 떨림은 어쩔 수 없다. 가솔린차에 익숙해져 있다면 불편할 수 있겠지만, 평소 일반적인 디젤차를 쭉 타왔다면 오히려 이 정도는 익살스럽게 느껴지는 게 매력이 될 수도 있다.
시승차는 라인업 중 최상위 모델인 4모션 R-라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륜구동이라는 뜻이다. 아우디의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주행 안정성은 아우디 A6와 큰 차이가 없지만, 왠지 더 신뢰가 가는 건 ‘4모션’보다는 ‘콰트로’로 굳어진 이미지 탓이 아닌가 싶다. 대신, 승차감에는 부족함이 없다. 일단 복잡하지 않고 익숙한 인테리어가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스티어링의 무게감이나 위치, 앉은 자세와 시트의 지지력, 시선의 높낮이가 모두 170~180cm 남성 운전자 체격에 잘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다. 소재와 기능들은 프리미엄의 그것보다 다소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불만은 없다. 오히려 같은 클래스에서는 최상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균형을 잘 맞춘 하체의 단단함 덕분에 급커브, 급제동, 급출발에도 쏠림은 심하지 않다. 요철을 넘을 때는 좀 더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겠지만, 넉넉한 19인치 피렐리 타이어에 욕심이 난다면 이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편의·안전장비들은 최신 가솔린 모델들만큼이나 충분히 갖춰져 있다. 일단 통풍 시트가 들어갔다면 메이커의 배려도 충분히 들어갔다는 뜻이다.
아테온 4모션 R-라인은 아우디처럼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아니지만, 쿠페형 후측방 디자인으로 스포티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운전석에는 드라이빙을 즐기는 아빠가, 뒷좌석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타면 이상적이다. 물론 구매로 이어진다면 디젤의 향수를 느끼는 아빠의 의지가 더 반영된 선택일 수 있겠지만, 15.5km의 인상적인 공인연비는 가계부를 쥐고 있는 아내에게도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