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부러지게 도드라지는 장점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포드 레인저를 짧게 시승한 소감이다. 수입 픽업이 내수 시장을 파고들 때는 신선함이 따랐지만, 지금은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국내 진출한 지도 3년이 다 돼가서인지도 모르겠다. 덩치도 마찬가지다. 자기 영역에서 중형밖에 되지 않지만, 타사 모델에 비해 레인저는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었다. 지금은 타호, 에스컬레이드, GMC 풀사이즈 근육질 차들이 등장하며 경쟁력은 다소 약해졌다.
승차감 역시 지난번 탔을 때보다 조금 덜한 느낌이다. 승차감이 시간이 지나 감쇄하는 경우는 드문데, 아마도 그사이 예민해졌던 세단들을 많이 타서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퍼포먼스 제원상으로 달라진 부분은 거의 없다. 17인치 휠·타이어(285/70), 앞쪽 더블위시본에 뒤쪽 리프스프링, 시트의 타이트함이 모두 같다. 엔진 역시 디젤을 얹는다. 출력·토크에 신선함이 없다. 사실 기대는 가솔린 모델이었다.
말이 조금 어긋났다. 포드는 이번에 레인저를 두고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즉 풀체인지를 이뤘다고 했는데, 이 정도라면 부분 변경에 가깝다. 약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특징적인 트럭 베드를 갖고 있는 픽업 세계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디자인과 디지털 시스템은 바뀐 게 좀 있다. 우선 전면부가 싹 달라졌다. 헤드램프 디자인이 큰형님이자 베스트셀링 카, 그리고 포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전설적인 픽업 F-150의 흉내를 냈다. ‘ㄷ’자 형상으로 DRL을 감싼 것이 그나마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12.3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세로형의 ‘최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그래픽이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시동을 켜면 스티어링 휠 뒤편에서 ‘Build Tough’라는 문구가 나타나는데, F-150의 헤비듀티 성향을 표현해 내걸었던 슬로건이다. 이외 모든 사용자 환경이 애플 제품을 경험해 봤다면 꽤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다. 유무선 스마트폰 충전은 물론 애플카플레이를 연동할 수도 있다. 이외에 편의·안전 사양, 험로 등 주행 모드 그리고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기능도 지원한다.
색상에도 변화가 크지 않다. 트레이드 마크처럼 대표하는 오렌지색 컬러는 레인저의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낸다. 아니, 사실 레인저 와일드 트랙만의 정체성이다. 한 레벨업, 다이내믹한 오프로드 질주를 표방하는 랩터 모델의 경우 청색에 가까운 짙은 파랑이 대표적으로 적용된다. 랩터는 와일드 트랙과 디자인 및 가격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엔진 구성은 같다. 다만 진입각·진출각 등을 높여 오프로드 성향에 최적화한 것이 특징이다. ‘빠른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질주한다’는 말로 랩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랩터는 와일드 트랙보다는 좀 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조금 더 과격하다. 와일드 트랙은 한층 톤다운이 돼 있다. 질주 본능을 일깨우지는 않는다. 2.0 바이터보 디젤 엔진은 205마력의 최고 출력과 51㎏·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지만, 왠지 강력하다는 말보다는 유연한 움직임이 특징이다. 효율성을 위해 선택한 10단 자동변속기 덕이 더 클 거 같다. 동력을 촘촘하게 이어주긴 하지만, 토크감을 상쇄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대신, 가격이 랩터보다 저렴하다. 랩터는 7990만원이다. 한참 올라 있는 상태인데 경쟁사가 가격을 내린 상태라 한 차례 가격 인하를 기대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시승차인 와일드 트랙은 635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