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는 고객 대상으로 매년 AMG 드라이빙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 BMW와 아우디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사가 이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자동차보다는 고객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순간이기에, 한번 매료된 고객들은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고도 기꺼이 다시 찾게 된다.
벤츠의 단체 시승 체험은 그해 가장 핵심이 되는 모델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차들을 타볼 수 있다. 보통은 오프로드 체험이나 짐카나 등의 부대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진행된 올해 행사에는 뭔가 다르다. 벤츠의 전동화를 알리는 EQ 브랜드, 그중에서도 AMG의 터치가 있었던 고성능 모델 EQS, EQE가 핵심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고성능 모델들과도 비교 체험해볼 수 있는 조금 색다른 이벤트로 마련된 것. 2억원을 넘나드는 AMG 전기차로 4.3km 길이의 트랙 16개의 코너가 있는 용인 스피드웨이를 달려본다는 게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참가자가 많은 관계로 조별로 나눠 진행한 행사에서 기자가 속한 A조는 전동화 모델 EQS부터 체험해보기로 했다. 이 차의 정확한 명칭은 메르세데스-AMG EQS 53 4매틱 플러스다. 여러 의미를 부여하려면 이름은 조금 길어질 수밖에 없다. 우선 이 차의 최고출력은 484kW(약 658마력)에 이르며, 950Nm(96.8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현행 전기차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 뿜어내는 모델 중 하나다. AMG가 아닌 일반 EQS는 245kW의 최고출력을 내니 239kW가 더 강력한 셈이다. 최대토크는 382Nm가 차이가 난다. 쉽게 말해 두 배 정도의 퍼포먼스를 더 낸다고 보면 된다.
EQS 53 4매틱은 일단 트랙을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데 어려움이 없다. 순간 가속력은 확실히 고성능 스포츠카를 타는 느낌이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우렁찬 내연기관의 울음소리 대신 모터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점(AMG에서는 내연기관차의 엔진음을 내주는 가상 사운드 시스템을 EQS에 적용)이다. 넘치는 토크감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차이이긴 하다.
그래도 사실, 이 차를 타고 트랙을 달리기 전 걱정이 앞섰던 것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를 늘리기 위해 얹어 놓은 107.8kW 대용량의 배터리 무게다. 차체의 무게가 늘수록 거동이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확했다. 하지만, EQS는 나름 괜찮은 제동력을 선보인다. 코너에서 안정감은 물론, 브레이킹 포인트가 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직선 구간이 끝날 무렵까지 제법 긴장감 있게 공략해 들어간다. 이어서 비교 시승을 하게 된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플러스를 통해 EQS가 얼마만큼 내연기관차의 특징들을 따라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EQS가 GT 모델의 퍼포먼스를 넘어설 수는 없다. 체감되는 무게감은 확실히 다르다. 참고로 GT 모델은 벤츠 AMG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출력은 639마력, 최대토크는 91.7kg·m에 달한다. 제원상으로는 엇비슷하면서도 EQS보다 살짝 부족하다. 하지만, GT 차체의 가벼운 무게는 드라이버가 원하는 만큼의, 훨씬 만족할 수 있을만큼의 퍼포먼스를 뽑아낸다. 모두가 전동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AMG가 과연 EQ 브랜드를 자신들의 색깔로 그려낼 수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많은 슈퍼카 브랜드들이 배터리 무게 탓에 순수 전기차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결국 EQ가 AMG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경량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잠시 뒤 체험하게 된 메르세데스-AMG EQE 53 4매틱 플러스는 그나마 EQS보다는 무게감이 덜하다. 좀 더 민첩하지만, 대신 거동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살짝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느낌이든다. 운전자의 능력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듯하지만, 애초부터 이 차는 트랙을 위해 탄생한 차가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공도에서 EQE의 존재감은 더욱 빛날 수 있다. 외형적으로 AMG만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AMG 전용 블랙 패널 라디에이터 그릴, 전용 사이드 스커트, 공기 역학적으로 장착된 전용 리어 에이프런, 리어 스포일러 등은 하차감을 높여주는 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