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E-클래스의 전설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글로벌 인기를 둘째 치더라도 국내에서만큼은 최고를 자랑한다. 라인업도 많을뿐더러 E-클래스의 국내 판매량은 압도적이다. E-클래스 라인업은 E250부터 시작해 E450 4매틱까지. 여기에 AMG를 보태면 모델 라인업만 10종에 이른다. 게다가 EQ 브랜드까지 합류한다. EQE 세단 350+에서 53 4매틱까지 4종, 그리고 EQE SUV는 500 4매틱과 350 4매틱까지 끝에 ‘E’ 배지를 단 벤츠는 모두 16종에 이른다.
행여나 빼먹은 게 있다면 GLE까지 더할 수 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올드(Old)와 뉴(New)를 모두 합치면 벤츠코리아에서 판매하고 있는 E의 종류는 무려 27가지나 된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EQ 브랜드 중에서도 E-클래스 SUV 모델 EQE SUV이다. E-클래스의 DNA를 그대로 이어받아 편안하고 안락하고 스트레스 없는 주행을 특징으로 한다. 전기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벤츠가 가진 E-클래스의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부드러운 가속 능력이 탁월하다. 지난번 EQA를 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성이 묻어난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BMW나 벤츠는 5과 E 이상이 되어야 진정한 프리미엄을 느끼게 해준다. 시승차의 정확한 모델명은 EQE 500 4매틱이다. 88.4kWh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고 최고출력은 402마력, 최대토크는 87.5kg·m이나 뿜어낸다. 풀 스로틀로 가속해보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4.9초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차량의 무게가 2.5톤에 이르니 퍼포먼스에 있어 아쉬운 소리가 나올 일은 없다.
휠은 20인치 타이어는 275mm 45를 앞뒤로 달았다. 넓은 접지면적에 편평비도 낮은 편에 속한다. 쉽게 말해 안정성과 승차감에 중점을 뒀다는 뜻이다. 참고로 크기가 살짝 크지만, 무게는 조금 더 가벼운 GLE 클래스는 20인치 휠에 275mm 50 타이어를 신었다. 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만큼 안정성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는 뜻이다. 물론 취향에 따라 휠과 타이어도 어느 정도 변경 가능한 선택지가 있다. 하지만, 처음 달고 나오는 OEM 제품이 그 차에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고 갈 필요도 있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은 중후한 멋과 승차감을 중요시하는 중년 남성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결론은 주행의 무게감은 느껴지지만, 고속 안정성이 뛰어나고 코너에서도 무게 중심을 잘 잡아뒀다. 회생제동 시스템은 여느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스티어링 휠 뒤편 패들시프트로 강도를 조절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주행 느낌에 있어서 불편하지 않은 편이다. 대체로 브레이킹의 감도를 잘 맞춰놨기 때문으로 보인다.
운전 편의성을 높이는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후륜 조향 시스템이다. 이 기능은 유턴이나 주차 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회전반경이 매우 짧은 걸 체감할 수 있는 데 왕복 4차선 도로에서도 한 번에 돌아나갈 수 있을 정도다. 참고로 이 차의 차체 길이는 4865mm이고 휠베이스는 3m가 넘어 짧은 편이 아니다. 오프로드를 위한 사륜구동 시스템도 겨울철 운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충전의 불편함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시승차는 제원상 완충시 주행가능 거리가 401km로 나와 있다. 첫 출발 전 큼지막한 디지털 클러스터를 확인해보면 450km를 훌쩍 넘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서울 시내와 주변 도시를 두어 번 오가는 여정에도 추가 충전이 필요했다는 건 사실 아쉬운 부분이다. 계산상으로는 충전하지 않고 반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마도 겨울 서울-부산 간 논스톱 여행은 힘들 듯하다. 전기차 하면 항상 따라오는 것이 인프라다. 자가 충전 시설만 갖춰져 있다면 완벽한 전기차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십 가지로 펼쳐지는 고급스럽고 몽환적인 실내 앰비언트 라이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 품격에 아까워하지 않을 1억3000만원의 가격이 당연 비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 것이 좋다.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