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100대.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BMW 5시리즈의 숫자다. 남들은 브랜드 전체 라인업으로 1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해도 쉽지 않다. BMW는 이 차종 하나만으로 1만 대를 넘겼다. 그중에서도 엔트리급 모델인 520i는 7888대, 전체 49%, 즉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에겐 매우 대중적인 차다.
기본 시작 가격 6880만원에 MSP를 더한 것이 7330만원이다. BMW 5시리즈 M 스포츠 패키지(MSP), 바로 이번에 기자가 시승한 차다. 누군가에게는 살짝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요즘 물가로 보면 수긍되는 수준이다. 더불어 챔피언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의 높은 가격대와 비교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다.
외관을 보면 8세대, 완전 변경을 추구한 만큼 확실히 달라진 부분이 많다. 다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키드니 그릴로 정체성을, 50:50 무게 배분은 그대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키드니 그릴은 필요에 따라 여닫히는 기능성을 띠고 윤곽을 따라 네온사인 느낌의 ‘아이코닉 글로우(Iconic Glow)’를 더해 멋스러움을 강조했다.
헤드램프는 더욱 멋있어졌고 아래쪽 범퍼는 검은색 하이그로시를 적용해 디자인적 차별화를 시도했다. 양 측면 에어 인테이크 역시 같은 색상으로 구분되지만, 실용적으로 갖는 의미는 없다. 후면은 새로운 7시리즈의 룩을 많이 표방했고, 램프의 고급스러운 엣지 스포일러는 제법 날카롭게 서 있다는 느낌이다.
운전석에 앉으면 두 개의 모니터가 넓고 곧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연결된다. 구현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시인성 좋고 반응성 빠르고 매우 발전돼 있지만, 디자인적으로는 사실 후퇴하고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스마트폰 전면 화면처럼 모두 같아 보인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기능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손가락 하나로 튀길 수 있는 변속기를 드라이브에 넣고 가속 페달을 밟으면, 520i MSP는 최고출력 190마력의 2.0 직렬 4기통 엔진을 통해 매우 부드럽고 빠르게 밀고 나간다. 실내 정숙성이 보장된 만큼 엔진음을 깊이 있게 감상하기는 힘들지만, 보닛 아래서 전달되는 떨림은 거친 4기통의 느낌이라고 하기보단 상당히 부드럽다. BMW가 가장 잘하는 부분인데, 이번 5시리즈에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스피드에 꽂힌 이들, 가속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스티어링 휠 뒤편 ‘Boost’라고 적힌 패들 시프트를 젖혀 보완하면 된다. 수동 느낌의 운전 재미는 퍼포먼스에 대한 무한한 갈망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데 충분하다. 다만, 한계는 분명하니 정석대로 가려면 콤팩트한 3시리즈나 1시리즈로 가는 것이 옳다. 아무래도 이 차는 ‘패밀리 혹은 비즈니스’라는 격식이 더 잘 어울리는 차니까 말이다.
제동력·와인딩 등의 주행 감성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 개선된 ADAS 기능 등으로 안락함은 물론 안정감과 운전의 즐거움과 편안함이 함께 제공된다. 휠베이스도 이전 모델보다 20㎜ 확장돼 조금 더 넓은 공간이 확보됐고, 통풍시트 등 편의사양도 충분히 갖춰져 있다. 2열로 넘어가면 USB 포트, 수트 걸이 액세서리 포트 등 단출한데, 쇼퍼드리븐을 위한 의전을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