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는 기블리 때 인기가 많았다. 우리에겐 의외로 저가 공략이 먹혔다. 페라리만큼은 아니지만 희소성 있는 차를 1억 언저리 돈에 소유할 수 있다는 게 기회였다. 그리고 한때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또 한 번 더 그 작전을 써먹어 본다. 이번에는 브랜드의 두 번째 SUV이자 모터스포츠의 기술력을 잔뜩 녹여 넣은 그레칼레다.
마세라티의 모든 차가 모터스포츠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자료를 보면 과거 페라리조차 넘지 못하던 마성의 레이싱카 제조사로 서술된다. 1939년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이탈리아 메이커 중 최초로 우승하기도 했으며 이후 1957년까지 23개의 챔피언십과 32개의 F1 그랑프리 대회 등에서 500회 이상의 우승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덕업일치는 항상 돈이 안 되는 법이다. 사세가 기울고 대중화할 수 있는 세단 모델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 차가 콰트로포르테, 그란투리스모, 기블리 같은 차들이다. 여기서 한 번 더 부스트업해서 나아간 것이 SUV 르반떼와 그레칼레다. 결국 MC20를 위한 포석이다.
포르쉐가 카레라(911)라는 항모를 구축했지만 더욱 강력한 전력을 위해 파나메라, 카이엔, 마칸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한발 늦기는 했지만 마세라티는 지금도 포르쉐에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의 기량은 충분하다. 오랜 시간 다져온 F1 기술력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는 기분이 색다르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Start’ 버튼을 눌러 엔진에 숨을 불어넣으면 범상치 않은 울림을 내며 달릴 태세를 갖춘다. 가속 페달을 밟은 오른발에 힘을 실으면 거침없이 나간다. 주행 느낌은 마치 시트콤 한 편을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폭소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승차 GT에 어울리는 제동력까지 맛볼 수 있다.
그레칼레는 세 가지 모델로 국내 판매되고 있다. 직렬 4기통 2.0 엔진을 탑재한 GT와 모데나, 그리고 V6 3.0 엔진을 탑재한 트로페오다. 시승차는 엔트리급 1억900만원짜리 GT 모델이다.
기대치는 트로페오에 꽂혀 있지만 슈퍼카 혹은 하이퍼카의 세계로 빠져들겠다고 한다면 여기 정도가 딱 입문 격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순서가 있다. 기거나 걷지도 않고서는 달릴 수 없는 법. 기본적으로 스포티함을 갖추는 휠과 타이어 사이즈, 공기역학적인 부분은 대동소이하다. 조금 발전한다면 다음 차로는 마세라티의 진짜 울림이 느껴지는 트로페오를 선택하면 된다. 그 야성의 소리가 궁금하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음원 파일로 내려받아 확인할 수 있다.
엔트리급인 GT나 모데나에서는 마세라티식 럭셔리한 실내 공간을 맛보는 것이 좋다. 독특하게 일자 배열해 놓은 변속 버튼을 제외하고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성장하는 과정을 놓치는 바람에 미처 몰랐지만 소프트웨어적인 부분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 연동, 그리고 대시보드 가운데 아날로그 시계는 기능적으로도 훌륭하다. 시계는 실제로는 디지털이다. 8인치 정도 되는 아래쪽 보조 모니터에서 화면을 바꿀 수 있다. G포스라던지, 나침반 등의 정보가 표시된다.
트림 대부분은 가죽으로 덮여 있다. 시트에 새겨진 양각은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2열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좁지 않다. 실제 부피가 마칸보다 크다고 하니 포르쉐에 기운 대중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하나 더 더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