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2.2초.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순간 뇌진탕을 불러 일으킬 거 같은 충격으로 달려나가는 경험이었다. 공도에서 했다간 정말 저세상을 구경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치러진 포르쉐 월드 로드쇼, 첫 순서인 신형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의 론치 컨트롤을 체험해본 소감이다.
전기차의 론치 콘트롤은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르다. 일전에 테슬라 모델 3 퍼포먼스에서 느꼈던 불편하지만 즐거웠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서킷에서 거칠 게 없었던 탓인지 임팩트는 타이칸 쪽이 더 강력했다.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동시에 오른쪽 발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새로워진 디지털 계기판에 '론치 콘트롤 레디(Launch Control Ready)'라는 문구가 뜬다. 이때 브레이크에서 왼발을 떼면 말 그대로 유체이탈의 초현실적 경험을 살짝 하게된다. 이러니 포르쉐가 외계인을 갈아 차를 만든다고들 하나 보다.
포르쉐 월드 로드쇼는 지난해에도 같은 장소에서 치렀다. 이 행사는 매해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포르쉐 애호가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다. 이번에는 9일까지 일반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718 박스터, 911 카레라, 마칸, 카이엔 등 25종 포르쉐의 다양한 차량 라인업을 만날 수 있다. 빠듯한 일정이니 차량 및 운전자 교대는 빠르게 이뤄지고 대체로 맛보기이긴 하지만, 성격이 뚜렷하니 그걸로 만족하다. 각각의 차종이 가진 고유의 성능과 핸들링을 서킷에서 극한으로 경험할 수 있는 드라이빙 세션은 매우 인상적이다. 지난해부터는 전기차도 대거 등장했다. 올해는 타이칸 말고 나온 전기차가 있는데, 마칸 일렉트릭도 포함된다.
마칸 일렉트릭은 서킷에서 본격 체험해볼 수 있었다. 용인 스피드웨이 서킷은 총 4.346km 길이에 16개 코너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오르막길이 살짝 나타나는 T8 코너가 가장 긴장되는 곳이다. 특히, 대열을 이루는 달리기에서 앞차와의 거리감이 줄어드는 데다가 언덕을 넘을 때 차량의 접지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무게감이 내연 차보다는 훌륭하지만, 제동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브레이킹을 한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마칸 일렉트릭은 자세를 낮춰 무게 중심을 아래로, 안정적인 선회가 가능했었다. 다만, 달리기 능력으로만 본다면 앞에 있는 마칸 터보 일렉트릭을 쫓아가기엔 역부족이라게 확실히 느껴진다. 일단 출력 자체가 200마력 이상 차이가 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비교군의 스펙이 너무 쎈 탓도 있다.
기자에게 이날 하이라이트는 하이퍼카 반열에 올라 있는 카레라들이었다. 공도에 나가지도 못하는 괴력의 911 GT3 RS는 400kg이 넘는 실질적인 다운포스를 자랑한다. 본격 서킷 주행은 말이 필요 없다. 직접 타봐야 알 수 있는 것. 그리고 아직은 내 몸에 익숙한 내연 차의 강렬함이 전기차보다는 더 끌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